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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숨어있는 도서관을 찾아서 - 한국점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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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5 16:12 조회 11,15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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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실없는 이상한 (?) 도서관
8호선의 북쪽 끝 암사역에는 바로 5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 총 면적 220여 평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4층짜리 도서관. 아늑한 열람실과 아담한 독서대, 낡은 나무 탁자와 커피 자판기 같은 것들
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외관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서관 안에 들어가 보니, 기대와는 달리 곳곳
에서 낯선 느낌이 든다.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모두 돌아본 뒤에야 그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곳엔 보통의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자료 열람실이 따로 없다. 빽빽한 서고
앞에 도서관 직원들이 책상을 이어 붙이고 앉아 바쁘게 일하고 있을 뿐. 책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직접 도서관에 찾아와서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대신 전화를 걸어 책
을 신청하면 도서관에서 우편으로 보내 준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눈으로 직접 책을 보고 고를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맞다. 이곳은 점자도서관이다. 더 정확히는 시각 장애인과 독서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이다. 6
점 점자로만 이루어진 점자도서, 묵자(시각 장애인들은 일반적인 검은색 인쇄 글씨를 이렇게 부
른다)와 점자가 함께 수록된 묵・점자 혼용 도서, 일반 도서 위에 점자가 인쇄된 투명 라벨을 부
착한 점자 라벨 도서, 손으로 만지면서 사물의 생김새와 촉감을 직접 느낄 수 있게 제작한 촉각 도
서, CD 등 재생 매체에 책의 내용을 담아 귀로 들을 수 있는 녹음 도서, 그 밖에도 저시력증 환자를
위한 큰 글씨 도서 등을 총 7만여 권 가까이 보유한 곳이다.

이곳, ‘한국점자도서관’에는 열람실이 따로 없는 대신 다른 도서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설들이 꽉 들어차 있다. 먼저 건물의 꼭대기 층인 3층에는 여러 개의 녹음실이 자리하고 있다.
낭독 봉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수시로 이곳에 들러 녹음 도서로 만들 책을 낭독한다. 녹음이
끝나면 녹음 파일과 원본 도서의 내용을 대조해 가며 틀린 부분을 중심으로 수정・편집 작업을
거쳐 녹음 도서를 완성하게 된다.

2층에는 보유 서적 대부분이 보관되어 있는 서고가 있다. 책장과 책장을 틈이 없이 붙여 놓고
필요할 때마다 책장에 달린 손잡이를 돌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이라, 마
치 고서 보관 창고 같은 느낌을 준다.

1층은 점자 도서를 제작하는 출판사가 사용하고 있다. 점자로 변환된 문서 파일이 이곳에서
인쇄와 제본 과정까지 거쳐 책 꼴을 온전히 갖추게 된다. 해당 출판사에서 원본 도서 파일을 제공
받는다면 초기 단계 작업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지만, 정보 누출을 꺼리는 분위기 탓에 그러기가
쉽지 않다.

결국 내용 입력부터 제본까지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만드
는 데 최소한 3개월, 길면 1년이 넘게 걸린다. 게다가 분량도 만만치 않다. 묵자 도서 한 권이 점자
도서로 변환되면 기본 서너 권으로 늘어나게 된다. 점자는 동일한 크기와 간격을 유지해야 하니
묵자처럼 글자 크기를 늘렸다 줄였다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묵자 성경은 두툼한 한 권의 책이지
만 점자 성경은 20권짜리 연작이 된다. 조정래의 『한강』은 60권, 박경리의 『토지』는 100권 이상
으로 불어난다.

도서관에 웬 출판사? 그러고 보면 3층에서 만들어 내는 녹음 도서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도
서관은 책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빌려 주는 곳이 아니던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점자
도서를 제작해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대
부분은 점자도서관에서 직접 책을 제작하는 일까지 떠안고 있다. 한국점자도서관에서는 출판 과
정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2007년에 점자 도서 제작 업무를 출판사로 독립시켜 ‘사회
적 기업’으로 등록한 상태다.

마지막, 지하 1층에는 관장실이 있다. 관장실이 비좁은 ‘지하’에 있는 도서관도 처음이려니와,
그나마 점자 동판 자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한가운데 놓인 긴 작업대에서는 한창 촉각도
서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육근해 관장(49)이 이 건물에서 차지하고 있는 것은 책상 하나
가 전부인 듯했다.





40년, 말로 다 할수없는 그역사
육근해 관장이 한국점자도서관을 맡은 것은 2004년부터다. 그녀의 아버지, 고(故) 육병일 초대
관장은 이 땅에 처음으로 시각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을 세운 사람이다. 고아들을 수용하는 시설
이 겨우 몇 개 있을 정도였던 시절, 장애인이 길에 나서면 ‘재수 없다’고 손가락질 받던 시절이었
다. 어려서 홍역을 앓은 뒤 시력을 잃게 된 육병일 초대 관장은 시각 장애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을지언정 지적 능력은 일반인과 별다를 것 없는 수십만
시각 장애인이 당당히 자립하고 나아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바로 책이었다. 1969년, 그는 가진 재산을 몽땅 털어 자그마한 점
자도서관을 열었다.

그 뒤로 그와 가족들이 겪어 온 시련들을 일일이 적기엔 지면이 턱없이 모자랄 터. 5남매의 막
내였던 육근해 관장은 자라면서 한 번도 등록금을 제 때 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없는 형편에 도
서관을 운영하자니 집은 따로 없었다. 도서관에 직원을 둘 수도 없었다. 온 식구가 도서관에 살면
서 도서관 직원이 되어 밤낮없이 일해야 했다.

자식들 등록금은 뒷전이면서 시각 장애인도 문화를 누려야 한다고 아마추어 무선 햄 동호회
와 야유회를 조직하는 아버지. 자식 공부시킬 생각은 않고 한글 타자기를 들고 시각 장애인의 집
을 돌며 타자 교육을 시키던 아버지. 어린 마음에 그런 아버지가 버겁지는 않았을까.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반항할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어려서 제가 아버지를 많이 모시고
다녔어요. 그런데 버스도 닿지 않는 산골에 가도 우리가 만든 책이 꽂혀 있는 거예요. 때로는 내
손때가 묻은 책도 있고. 거기 계신 분이 아버지를 붙들고 고맙다고 우시고. 그럴 때 뭔지 참 뿌듯
했어요. 이것이 참으로 귀한 일이구나, 하고 알았지요.”

육근해 관장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경륜과 확신을 담아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돌아가
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동안만큼은 보일 듯 말 듯 흔들리는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어느 인
터뷰에서 ‘아직도 꿈속에서 아버지는 늘 공무원을 붙들고 뭔가를 애원하고 계신다. 그런 꿈을 꾼
뒤에는 나도 다시 오기가 생긴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잠시 아버지를 돕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도서관 일, 하지만 1997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는 이 일이 자신의 사명이
라는 것을 선명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해에는 쫓겨나다시피 다닌 여섯 번의 이사 끝에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현재의 건물을 위탁운영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점자도서관과 점자책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다양한 국제 활동을 통해 시
야를 넓혔다. 낙후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 우리 환경에 맞는 시각 장애인 서비스에 대한 본격적
인 고민과 모색이 이어졌다. 하지만 시련의 시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2001년 무렵에는 정부 지원금이 큰 폭으로 줄면서 재정 위기로 인해 신용불량자 딱지를 달기도 했다.
어떻게든 도서관 문을 닫지 않기 위해 그저 ‘처절한 몸부림’을 쳤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뜻을 알
아주는 이들이 늘고 여기저기서 후원금도 들어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놀라운’ 정부정책 vs ‘놀라운’ 성과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들이 이토록 무거운 짐을 떠안고 살아와야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공립 점자도서관이 없다. 40여 곳의 도서관 모두 민간에
서 운영하는 시설이라 한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졌
다고들 한다. 하지만 민간 점자도서관의 역사가 40년이 넘을 동안 나라에서는 단 한 곳의 도서관도
열지 않았다니. 점자도서관의 수가 40여 곳으로 늘어난 이면을 들여다보면 골치가 더 아파진다.

우리나라에 처음 점자도서관에 관한 법령이 만들어진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다. 한국점자
도서관이 기를 쓰고 자신의 존재를 알린 결과였다. 1980년대부터는 소관 부처 변경에 따라 이리
저리 내몰리는 신세긴 했으나, 예산 지원도 받게 됐다. 당시 지원 금액은 500만 원선. 물론 도서관
운영에는 턱없이 모자란 액수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들어 예산 지원이 늘어나게 됐다. 정
부 지원액이 늘자, 갑자기 전국적으로 점자도서관의 수도 불어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당시
의 한국점자도서관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20평 규모에 점자책 1,500권’이라는 도서관 설치 기준
은 2010년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 지금도 이 조건만 만족시키면 점자도서관으로 등록하고 정
부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점자도서관의 수가 얼마가 됐든 총 예산 지원액에
는 변화가 없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점자도서관의 수가 늘어날수록 각 도서관이 지원받을 수 있
는 예산은 같은 비율로 줄어들게 된다. 현재 한국점자도서관은 5억 원이 넘는 운영비 중에 1억 원
정도를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올 들어 점자도서관이 또 하나 생겼으니 지원액도 따라
줄어들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그동안 이 도서관은 살아남는 일만으로도 벅찼을 것 같다. 그런데도 열악한 여
건 속에서 이들이 쌓아 온 성과를 보면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묵・점자 혼용 도서, 점자라벨 도서 등 앞서 열거한 여러 종류의 책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들이 끊임없이 자료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꾀해 온 결과물이다. 특히 촉각도서의
경우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많지 않아 해외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시선이 많다. 이미 일어
판, 영어판 도서까지 준비 중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되던 국내 녹음 도서의 형식을 국제 표
준인 데이지(Digital Accessible Information System : 자유로운 검색과 재상 등이 가능한 디
지털북) CD 형식으로 끌어올린 것도 이들의 공이다.

요즘 서울 지역의 맹학교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북(book)소리 버스’도 빼놓을 수
없다. 버스를 개조해 바닥에 온돌을 깔고 양편으로 아기자기한 책꽂이를 배치한 북소리 버스는
80년대부터 시작한 ‘찾아가는 서비스’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시각 장애 아동들이 흥미를 가
질 만한 각종 책들을 싣고 찾아가 빌려주고 동화 구연도 해 준다. 지난가을부터는 청각 장애 아동
들이 다니는 농학교에도 가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2001년부터는 시각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점자 명함 갖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점자 명함이란 일반 명함 위에 요철로 점자를 새겨 넣은 것을 말한다. 꼭
시각 장애인에게 명함을 건넬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각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간다
는 것을 일깨우기 위한 역할이 더 큰 명함이다. 처음엔 낯설어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지갑
속에 점자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꽤 많아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법!
요즘 육근해 관장의 관심은 온통 법안 제정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이름 하여 ‘독서장애인도서관
진흥법’이다. 이 일에 전력을 쏟기 위해 관장 일과 함께 겸직하고 있던 점자문헌정보학 교수직도
그만둔 참이다. 국가 차원에서 독서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을 운영하도록 하고, 현재 뿔뿔이 흩어
져 제각기 활동하고 있는 점자도서관들 사이에 네트워크를 조직해 좀 더 안정적이고 질 높은 서
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법 제정이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법안이 정비되어 점자도서관
을 둘러싼 제도적 시스템이 안착되면, 한국점자도서관은 지금까지 어렵게 일구어 온 공공 서비
스 영역을 국가에 넘기고 각 지역 도서관의 롤 모델로서 대안을 제시하고 지지・지원하는 역할
에 충실하고자 하는 구상을 갖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10년 동안 이끌어 온 국내 데이지 시스템
운영 권한을 고스란히 정부에 이관하기도 했다.

“제게 나름의 소망이 있다면 지금까지는 외국의 사례를 배우고 들여오느라 애썼지만, 언젠가
는 그들이 거꾸로 우리한테 와서 배워 갈 수 있도록 선진화된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조만간 그런
날을 맞을 수 있도록, 제 온 힘을 바쳐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목소리를 높이며 힘을 주던 육근해 관장이 다시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장애인은 그냥 다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점을요. 모두 다른 옷을 입고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사는 것처럼 일반인과 장애인도 서
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는 모두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걸 깨닫는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 도서관이 시각 장애인만 보는 책이 아니라, 일반인과 시각 장애인이 함께 볼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우리 사회가 모든 시설과 서비
스, 자료, 정보, 또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도 이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의 시각 장애인 수는 4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그중에서 90% 이상은 선천적 장애
가 아닌 사고나 질병으로 시각 장애를 안게 된 경우라 한다. 다시 그중에 절반은 40세 이후에 시력
을 잃는 경우라니, 어쩌면 남의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돌아오는 길. 따듯한 봄 햇살에 길가의 눈은 언제 쌓였던가 싶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한산해진
지하철역을 걸으며 사람들이 무신경하게 밟고 지나가는 노랗고 좁은 길을 바라본다. 나 역시 지금껏
늘 그래 왔을 것이다. 계단에 다다르니, 손잡이 끝에 붙은 스티커가 눈에 들어온다. 손끝으로 만져 보니
어느새 익숙해진 오돌토돌한 감촉이 전해진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 안전문에는 ‘모란 방향’이라고 쓰인
안내판 위에 점자 스티커가 붙어 있다. 아마 반대편에도 있었을 텐데, 아까는 보지 못했다…….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어쩌면 이렇게 작은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멀쩡히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던 것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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