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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도서관에서 떠나는 자유학년 여행] 도쿄 K-BOOK FESTIVAL, 한국문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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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12-05 17:18 조회 3,80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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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미안합니다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상한 고집으로 오랫동안 일본어를 거부하고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도 두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일본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도 나는 의도적으로 일본 문화를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거부감이 뼛속 깊이 있었기에 독립운동에 대한 다큐를 볼 때면 눈물부터 났다. 그래서인지 요즘 한일관계 속에서 등장한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운동이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이처럼 격한 사고방식 속에는 언제나 조심해야 할 대목이 숨어 있다. 첫째,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지성이 있는 일본인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 둘째, 일본에도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것. ‘노재팬(No Japan)’ 운동에 불이 지펴지기 시작했을때, 나는 일본 한복판에서 일하고 있는 한 한국인 언니를 흠모하게 되었다.(호칭을 뭐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올해 만남으로 언니 동생 사이가 되었기에, 성공한 덕후로서 언니 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언니는 급기야 나를 도쿄, 헌책방의 수도인 진보초로 이끌었다. 일본에서 한국 책을 번역하고 출판하고 판매하는 김승복 언니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 일본으로 출발했다.
대다수 국민이 동참하고 있는 일본불매운동이 한창인 시기에 일본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오직 승복 언니가 진행하는 일본에서의 한국 책 페스티벌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자기최면이 필요했다. 도쿄 한가운데서 2·8 독립선언을 외친 한국인 청년들처럼 나는 지금 한국의 드높은 출판 수준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라고. 독립선언문을 학생 모자 안감에 넣어 한반도로 건너온 송계백 선생처럼, 나는 K-Book 페스티벌의 면면을 우리 도서관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을 뿐이라고. 한국 문학에 환호하는 일본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째서 감사하고도 신기했을까? 나는 왜 오랫동안 일본 문학에 열광하는 한국인만 존재한다고 믿어온 것일까.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학교도서관에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딱히 일본 작가의 책이라고 여기기보다는 추리소설 부문에서 단연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으로만 생각해 왔다.
이는 출판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작가들의 새로운 책이 서점에 나오기도 전에 광고가 먼저 휩쓸고, 품절 열풍이 불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출간하기도 전에 권당 15만 부를 찍었고, 예약판매 기간 중 3쇄에 들어가는 국내 출판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질 정도였다. 그렇다면, 일본 사람들은 한국문학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애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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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한국에선 독서인증하면 팔로우를 끊는다고?
최근 우리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생들과 『82년생 김지영』이 영화화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남학생들이 와서는 그 영화를 볼 것인지 물었다. 그래서 “너도 관심 있어? 영화 재미있어?”라고 물으니 안 봤다고 했다. 그럼 책을 읽었냐고 물었더니 책도 안 봤다고 했다. 그럼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거 안 좋은 거잖아요.”라고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근거 없는 혐오가 ‘잘 모르는 것’이나 ‘잘못 알고 있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이번 ‘82년생 김지영 별점 테러’ 사안 또한 작품을 제대로 접하지 않은 사람들의 선입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한국뿐 아니라 유교문화가 있는 아시아 곳곳에서 작품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2019년 11월 9일, 도쿄에서 열린 K-Book Festival에서 단연 인기 코너는 한국 소설 부문이었다. 한국 책을 사랑하는 독자 혹은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 한국어를 익히려는 사람들이 1,000명 이상 방문했다. 행사에서 소개된 책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책은 바로 『82년생 김지영』이었다. 이 책은 일본, 대만,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출간 3개월 만에 13만 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한 분석가는 이 현상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분노’가 많이 표출되고, 일본에서는 ‘눈물’이 많이 나왔다. 내면화된 형태로 여성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이니 당장 학교도서관에 이 문제작을 큐레이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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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큐레이션을 하며 생긴 궁금증은 이런 것이다.
첫째, 읽거나 보지 않았는데 이 책 혹은 영화가 나쁘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이 소설이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고 하는데 어떤 점이 젠더 갈등이라고 생각하는가?
셋째,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데 청소년들은 이 소설의 김지영 씨에 대해 어떻게 느낄까?
 
단순히 젠더갈등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
우리 문학을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목소리와 같은 것!
 
김지영 씨처럼 1980년대생인 나도 이 소설에서처럼 오빠 위주의 집안 분위기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며 자라왔다.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도 “여자보다는 남자가 성공해야 집안이 편안하다.” 같은 문장의 오류를 생각해낼 수 없었다. 여기에 ‘왜?’라는 물음을 던진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같은 1980년대생이지만 김지영으로 살지 않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반된 내 모습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제야 나의 부모님도 그 문장의 오류에 동감하고 있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 새롭게 개념을 설계하고 가치를 부여한 후 찾아온 나에 대한 인정과 사랑은 이처럼 내면의 자기인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최근 K-Beauty, K-Pop과 같은 문화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보급되면서 한국 문화가 트렌드가 되고 있다. 유명 해외 디자이너들이 한글을 이용해 프린팅한 신발을 선보이거나, 옷 장식을 한 경우도 본 적이 있다. BTS가 입고 나와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국내 스트리트 브랜드도 있었다. 혹시 이제는 K-Book의 차례가 아닐까? 한국문학이 단순히 K-문화의 열풍을 타고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는 길은 우리부터 더 많이 읽고, 느끼고, 사랑해서 그 가치가 변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일이다. 『82년생 김지영』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시절 공유했던 상처도 작품이 된 뒤에는 비로소 극복이 되며 이는 국가라는 장벽을 넘나드는 일이 되곤 한다. 내가 겪고, 우리가 겪고, 모두가 겪은 일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저마다의 가정에서 겪은 누군가의 상처가 이제 겨우 회자된다면 그보다 끔찍하고 가혹했던 상처의 시절 또한 마땅히 작품화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오랜 시간 동안 거부해 온 일본 문화 또한 상처의 시절을 작품화하고 두 나라가 모두 분노하고 눈물 흘린 이후에야 비로소 치유의 길로 접어들지 않을까 싶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 기술하며 유명해진 말, “모든 슬픔은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라는 말은 그런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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