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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도서관에서 떠나는 자유학년 여행] '먹방' 에서 '책방' 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북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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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09-09 17:44 조회 3,57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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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에서 시작된 도서관 북큐레이션
 
TV를 켜도, 유튜브를 켜도 여기저기서 ‘먹방’을 피할 길이 없다. 먹는 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언제나 옳다. 개인적으로 먹방 꿈나무를 소망하는 1인으로서 한때 대구의 맛집이란 맛집을 정복하러 다니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그 결과 엄청난 몸무게 증량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에 비례한 삶의 허무도 느끼게 되었다. 이 많은 것들을 먹었는데 나에게 남는 것이 ‘비곗덩어리’라니! 그 시기에 내가 만난 좋은 친구는 나를 먹방의 길에서 책방의 길로 인도했다. 금단현상처럼 맛있는 것을 못 먹으면 초조해하는 나에게 달콤한 책 한 권씩을 시식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유심히 나의 직장생활을 관찰하던 그 친구가 던져준 첫 번째 책은 『필경사 바틀비』였다. 그때까지 바틀비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어서 나는 ‘이런 제목의 책도 다 있구나.’ 싶어서 무척 궁금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이거 뭔가 이상하다.
‘왜 나에게 이런 책을 추천한 거지? 왜? 내가 바틀비 같아 보일까? 뭐지, 나 이렇게 비참한 거야?’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이 책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필경사일을 하는 바틀비 씨에 관한 이야기다. 성실하게 일을 잘하던 그가 어느 날부터 일을 거부하기 시작하더니 언젠가부터 무슨 일을 시켜도 “안 하겠습니다.”만 연발한다.
그날 새벽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쉼 없이 먹는 것과 직장 스트레스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보니 나의 먹방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학교에서 무슨 일을 부탁해도 ‘YES’만 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때는 내 부서와 아무 관련 없는 학교 행사 준비로 밤늦도록 학교에 남아서 일을 하는 바람에 몸살이 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링거액도 맞아 봤다. 약기운에 의존해서 행사를 무사히 치르긴 했지만 그 후 다시 대상포진에 걸려 혹독하게 앓아야 했다.
한동안 우리는 ‘워라벨(Work-Life Balance)’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일을 많이 하면 삶을 잘 즐긴다고 착각한 시간들을 돌이키다 보니 저절로 삶과 일의 균형을 찾아가는 북큐레이션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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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사랑을 알아?
 
내가 알게 된 기쁨은 도서관을 찾는 학생들에게로 자연스레 전달되었다. 뜨겁다 못해 녹아내릴 것 같은 대구 날씨를 극복하기 위해 도서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한여름 고전 읽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위해 북큐레이션의 주제를 정하자고 하니 단연 ‘사랑’이 압도적이었다. 풉, 니들이 사랑을 얼마나 안다고. 그래 해보자. 책을 사랑으로 배워보자꾸나. ‘사랑’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진리가 아닌가. 도덕 교과 시간과 연계하여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아가페/에로스/플라토닉 등으로 접해 볼 수 있도록 엄선한 작품들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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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작품은 청소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인 황순원의「소나기」를 골랐다. 먼저, 미국 학생들이 중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접한 「소나기」에 대한 반응을 보여준 뒤 다양한 소재들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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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정답 제시가 아닌 내가 느낀 날것 그대로의 책!
 
외국에서도 우리 고전을 인상 깊게 읽는다는 데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학생들이 작품을 한 번 더 꼼꼼히 읽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들 역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색깔의 상징 등을 이야기하다가 학교 내 이성교제가 왜 허용되지 않는지까지 토론하며 풍성한 첫 시간을 열 수 있었다.
두 번째 작품으로는 만남과 헤어짐의 기록인 이상의 「봉별기」를 선택했다.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일제강점기와 작가를 소개하는 자료를 함께 제공하면서 혹시 동떨어졌다고 느낄까봐 이 소설을 모티브로 만든 ‘가을방학’이라는 가수의 노래<속아도 꿈결>을 계속 재생해 놓았다. 아이들은 작품 속에서 몇 번의 헤어짐이 반복될 때마다 아쉬워하거나 응원하며 성숙한 몰입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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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시간도 많으니 세 번째는 장편으로 가봐야겠다 싶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선정했다. ‘너무 사랑한다면 죽을 수도 있는가’라는 주제와 유명인들의 자살을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에 대해 긴 대화가 오고갔다. 그리고 SNS 형식을 빌려 젊은 베르테르를 위로하고 추모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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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 질투와 의심에 눈이 가려진 김동인의 「배따라기」를 선보였다. 누군가를 질투해 본 나의 경험 찾기, 의심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미워해 본 적은 누구에게나 있어 보였다. 그리고 질투를 물질적 성공으로 극복하려 한 남자를 다섯 번째 사랑 이야기로 소개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제목처럼 개츠비는 정말로 위대한 것인지 허세가 가득하다고 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이 남자를 순수남이라고 표현하는 학생이 더 많았다. 개츠비의 뇌 구조와 평소 생활을 알아볼 수 있도록 개츠비 개인 SNS를 만들어 보는 활동에 공을 들였다.
드디어 대단원의 막에서는 사랑할 줄 알고, 사랑받을 줄 아는 황진이로 넘어갔다. 단순히 예쁜 기생으로서가 아니라 엄연한 한국문학의 기둥으로서 자리한 작가 황진이를 만나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황진이의 시조를 랩 가사로 재해석하고 각 시작품들을 오늘날의 단어로 바꾸어 표현해 보았다.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 사랑이 취미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행복해짐을 느꼈다. 먹방 대신 책방, 살 대신 사랑을 선택하며 도서관에서 머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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