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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영국의 독서문화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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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6:04 조회 8,31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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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책이, 사람을 꿈꿀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8월 9일, 유로스타를 타고 샌 판크라스 역에 도착했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행 기차를 탔던 곳이다.
환상과 달리 현실은 무장한 군인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파리에서부터,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TV를 통해 본 런던 폭동이 실감났다. 8월 6일, 런던 북부의 한 빈민가에서 29살 청년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자 지역 주민들은 경찰이 선량한 흑인 시민에 대해 인종차별적 과잉대응을 했다고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시위가 청년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집권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고 새로운 총리가 집권하면서 혜택이 많이 줄어들어 살기 힘들어진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청년 실업이 비단 우리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씁쓸했다.

현실의 씁쓸함을 머금은 채 베이커 스트리트 221번지라는 상상의 공간을 지나갔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의 주인공이 살던 곳으로 현재는 셜록 홈즈 박물관이 서 있다. 이 가상의 주소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아이들의 편지가 지금도 온다고 한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만큼이나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길게 선다는 영국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살기 힘들어 시위를 해야 하는 강퍅한 현실 속에서 문학이, 책이, 사람을 꿈꿀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리고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동심이 부러웠다.

한밤중에 자기의 일상을 떠나서 어디인가를 갔다가 제자리로 되돌아와서는 전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기의 일상을 계속하는 것들이 어디 학의 섬 하나뿐이겠습니까? 사실은 저도 늘 그러는걸요. ~ 잠시 잠깐만이라도 자기의 일상을 떠날 수 있고, 또 그렇게 떠나갔다가는 전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자기의 일상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그것은 예술적인 행위입니다. 예술은 쇠사슬에 묶이어 있는 채로 춤추기라 말한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한승원, 『어린별』, 「학의 섬」 중

걸어서 15분 이내에 있는 작은 도서관의 힘!
영국 런던의 차이나타운 동쪽에 자리 잡은 차링크로스로 이동했다. 지역공공도서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Library, 査寧閣圖書館(사녕각도서관)이라고 영어와 중국어 간판이 함께 있어 잠시 의아했다. 유럽까지 와서 아시아계가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하나 보자고 왔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입구도 어둡고 비좁아서 이런 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목적지가 맞나 의심하기까지 했다. 들어가서야 중국어 간판이 함께 걸린 의미와 가치를 깨달았다. 영국은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공공도서관이 있다고 한다. 시골이어서 거리가 먼 곳엔 이동도서관도 찾아간다고 한다.




일상적으로 독서를 하는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차링크로스 도서관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번화한 상가 속에 들어가 있느라 그렇게 작고 비좁은 것이었다. 주이용자인 중국 이주민들을 위하여 중국어를 병기한 간판은 배려였다. ‘작은 도서관’의 가치를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도 시골에 이동도서관이 있고 영국에서 하는 독서교육 중 웬만한 것은 거의 다 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마다 2~3개, 3~4층 높이의 번듯한 건물이 있는 우리 도시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서 이 작은 차이가 독서 습관 형성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사는 아파트에 주민을 위한 작은 도서관이 있고 뜻있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든 전원주택마을에도 도서관을 만드는 등 우리나라 선각자들의 작은 움직임의 가치도 새삼 깨달았다.

도서관 내부는 복층으로 소박하고 아름답게 디자인되었고 좁은 곳에 많은 책이 빼곡히 차 있었다. 관장님, 사서, 보조직원, 자원봉사자, 앉아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 등 그 좁은 공간에 있을 것이 넘치게 있는 도서관이었다. 차이나타운 인근에 위치한 까닭에 중국계 사용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중국어로 된 소설과 잡지뿐만 아니라 이주민을 위한 실용영어 서적이 많았다. 중국에 관한 가장 많은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고도 한다. 며칠 전 방문했던 프랑스도 마찬가지인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도서관 한쪽에 앉아 아이에게 책을 낭독하는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13세에야 비로소 글자를 보면서 받아들이는 것과 귀로 들어서 받아들이는 정보의 이해력이 일치한다고 한다. 그러니 12세 전후까지는 낭독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초등 독서교육에서 꼭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낭독으로 시작하는 독서교육제도 ‘북스타트’
우리나라와 살짝 다른 영국의 독서교육 두 번째는 ‘북스타트 운동’이다. 1922년 웬디 쿨링이 창안한 것으로서, 책이 든 가방을 생후 7개월에서 9개월이 된 모든 아이에게 나눠주는 운동이다. 아이가 받은 가방 속에는 크레용, 두 권의 책, 부모를 위한 지역도서관 회원증과 아이와 함께 책 읽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는 부모용 안내서가 들어있다. 북스타트 운동에 참여하면 아이는 생후 7개월부터 생후48개월까지 3회에 거쳐 3개의 가방을 받게 된다. 가방 속에는 아이의 성장 발달에 맞춘 책들과 부모를 위한 안내서가 들어있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도 집집마다 어린 자녀를 위한 책들이 가득 차있다. 그리고 어린 자녀를 위해 부모가 집안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어 준다. 그러나 영국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공적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책을 꾸준히 가까이 하는 분위기와 환경을 마련해 준다는 점이다.

자기주도성과 자율성을 키우는 독서교육
세 번째로 다른 것은 도서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Chatterbooks’ 프로그램이다. 이 도서관도 도서관체제에 가입되어 독서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 도서관에서는 5세 이하의 아동이 방문하면 잘생긴 자원봉사자 ‘룩’이 책을 읽어 준다. 룩은 때론 아이들과 노래도 하고 부모가 책을 읽어주도록 독려하는 지원을 하고 있다. 5세~11세의 아동은 주 1회 자원봉사자가 학교로 직접 찾아가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고 독서를 장려한다. 영국 전역의 도서관에서 매년 6주간의 여름방학에 진행되는 ‘독서챌린지’ 프로그램을 지금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6주간 6권의 책을 읽고 목표를 달성하면 ‘독서왕’으로 인정하는 프로그램이다. 목표인원은 80명인데 현재 92명이 등록했고 33명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16세 ‘리나’를 통해 학교의 독서교육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영국은 5세부터 16세까지는 의무교육을 받는다. 리나는 대학 입시인 A-level을 준비하는 과정인 식스폼(Sixth Form) 2년째였다. 전라남도교육청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연간 60권 읽기 운동을 시작했기때문에 우리처럼 추천도서목록이 있는지, 도서목록은 누가 정하는지 물었다. 리나는 의무교육기간인 16세까지는 모국어 읽기 능력 향상을 위해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지속적인 관리를 받지만 16세 이후에는 본인이 선택한 과목에 집중해 스스로 독서해 나간다고 했다.

초등학교에서는 추천도서목록을 받았지만 중학교이후는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한다. 리나는 매주 1권 정도를 추천받았고 여름방학에는 자신이 진학할 영문학 관련하여 10권의 책을 추천받았는데 그 중 6~7권은 읽어야 진로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스스로 읽는 것이지 안 읽는다고 해서 제재를 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추천도서목록은 필독서목록이 아니라 그야말로 주제별로 독자의 수준에 맞는 책을 추천해주는 성격일 뿐이다. 우리나라 일부 학교처럼 필독서를 주고 독후활동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조바심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어 책을 멀리하게 하는 요인이 아니었을지 반성해 본다. 우리도 그것을 깨닫고 요즘은 필독서목록을 만들지 말라는 권고가 퍼지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도서목록은 오직 아이들의 개별성에 맞게 책을 안내하는 역할을 할 뿐 선택은 아이들이 한다. 중학교 과정에서는 스스로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각 교과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책을 가까이 하는 교사가 사서나 국어 교사 위주로 치우쳐 있어 과학이나 예술 계열의 추천도서목록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생후 7개월부터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책을 읽는 것이 생활화된 환경에서는 어떤 교과 교사든 책을 추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나 영국 도서관을 갔을 때 부모님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와서 책을 낭독하는 모습을 보고 한편으로는 좋아보였으나 책을 사서 집에서 큰 소리로 낭독하면 더 편하지 않을까 의아해한 적이 있었는데, 책을 선택함에 있어 시행착오를 맘껏 해보라는 뜻에서 도서관에서 빌려보게 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주도적으로 책을 선택하고 독서를 한 경험은 나중에 삶의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에도 자율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 갈수록 사교육에 의존하고 자기주도적 학습력이 떨어지고 부모 의존도가 높아지는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생각할 때 잘된 독서교육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우리사회 문제를 해결할 돌파구를 찾고 온 느낌이다.

그런데 한 가지, ‘독서챌린지’에서 낙오자는 어떻게 지도하냐고 했더니 그냥 둔다고 한다. 프랑스나 영국 사람들은 책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읽어서 부러운데 우리나라는 책을 잘 읽지 않아서 이 연수를 기획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큰 숙제인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었더니, 역시 그냥 놔둔다고 한다. 지원이란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주고 독서방법을 도와주는 것이지, 읽고 싶지 않은 친구들에게 억지로 읽히지는 않는다고 한다. 단지 블로그에 책을 읽고 후기를 올려 아이들이 검색하다가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정도로만 독서를 장려한다고 한다. 뭔가 대단한 비책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갔다가 단순한 답에 허탈감을 느꼈다. 그들의 당당함에 주눅이 들기도 하고,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하기도 했다.

우리 팀 중에는 독서토론유공자도 섞여 있었다. 그래서 영국의 독서토론교육은 어떠한지 리나에게 물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같은 책을 읽고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기도 했으나 중학교부터는 책 읽는 기술이 부족한 그룹만 따로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과하도록 지도한다.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퍼져 있고 토론은 교사의 고유한 수업 방식으로 선택된다.

역작이 나올 만한 환경- 대학 도시와 전문 서점
다음날 1249년에 설립되어 39개의 단과대가 있는 옥스퍼드로 갔다. 고풍스러운 건물에 편리한 현대적 시설을 갖춘 도서관을 꼭 보고 싶었으나 단과대학들이 폐쇄적이어서 직접 들어가 보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그러나 고풍스럽고 지적이며 곳곳이 유적지인 대학 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해리포터의 촬영장 중의 하나인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의 식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기념품을 파는 앨리스 샵을 지나며 가이드로부터 학장의 딸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델이 된 사연을 들었다.

래드클리프 캐매러 원형 건물이 눈에 띄었다. 도서관의 오리지널 건물들 중 하나인 보들레이안 독서실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들어갈 수 없어 창틈으로 고풍스러운 실내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엿볼 수밖에 없었다. 옥스퍼드 대학의 전통 학위수여식이 열리는 샐도니언 극장을 지나 영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블랙웰(Blackwell) 서점에 도착하였다. 가이드가 우리나라에도 큰 서점이 있는지 묻는다. 우리 모두는 애국심에 불타 당당하게 우리나라에도 있을 건 다 있다고 한다. 1층을 들어갔을 때는 너무 평범해서 그것보라는 듯 질문한 가이드를 한번 쳐다봤다. 그런데 지하 1층을 내려갔을 때 펼쳐진 엄청난 규모와 서적의 양에 모두들 탄성이 나왔다. 지하 2층 지상 4층의 블렉웰서점을 나왔더니 또 다른 ‘블렉웰스 아트 앤 포스터 샵’, ‘블렉웰스 뮤직’ 등 분야별 전문 서점이 독립된 건물로 있었다. 역시 역작이 나올 만한 환경이라는 감탄이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기념으로 해리포터 원서를 사는 동료들이 몇 있었다.


무릉도원에 다녀오니 백발이 되어 있었다
여행이라는 것은 시냇물에 떠내려온 복숭아꽃잎을 따라 무릉도원에 들어갔다가 세상에 나와 보니 백발이 되었더라는 체험과 비슷하다. 독서 선진국 유럽에 들어가서 최대한 많이 보고 듣고 느끼다 돌아오려 노력했다. 돌아와 보니, 독서 교육에 대해 한 단계 성숙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우리나라 도서관과 학교에서 독서 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유럽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오히려 우리도 잘하고 있다는 확인을 받고 왔다. 그러나 아직 사회 전반적으로 독서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고, 그래서 몇 가지 인위적인 노력들은 역효과를 내고 있다.

영국이 우리와 다른 점은 북스타트처럼 공공 차원에서 태어나자마자 독서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낭독 등 독서를 위한 부모의 역할까지 구체적으로 지원하여 가정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작은 도서관이 집 가까운 곳에 있고, 서점이 발달되어 있으며 학교나 도서관에서 의무교육기간 동안 단체가아니라 개별성에 맞는 책을 추천하는 섬세한 안내가 잘 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선택하는 독서교육을 통해 자기주도성과 자율성을 길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적으로 사회 분위기면에서 가정과 사회와 학교가 독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을 본받고 싶다. 초등 낭독 교육과 개별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독서교육의 방향은 교사 차원에서 당장 적용해볼 만하다. 엄청난 장서수와 제도적 보완은 당국에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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