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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영상읽기] 영화 속에는 분단된 나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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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6-19 14:28 조회 8,26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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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돈 부산국제영화고 교사, 전국영상미디어교육협의회 회원


우리나라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인 조국이 둘로 나뉜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아직까지도 대립과 갈등으로 상처가 아물 날이 없으니 그 비극의 아픔은 더 크다. 분단된 지 어언 70여 년.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으나 아직도 하나의 민족이 총칼을 겨눈 채 수많은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점차 서로 다른 나라처럼 멀어져 이제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동질성마저 잊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선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영화 속에 드러난 북한의 모습은 어떨까 한번쯤 되짚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번에는 분단과 북한에 관련된 영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일반적으로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라면 으레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장훈 감독의 <고지전> 등 치열한 전투 장면을 스펙터클한 화면 속에 실제처럼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을 압도하는 전쟁 관련 작품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감동이 흐려지지 않고 뚜렷한 이미지로 각인되는 영화들이 있다.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거나 피가 튀지 않아도 그 감동은 작지 않다. 이념과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서로 갈라져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민초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닌 웃음으로 서로를 다독이는 인간미가 넘쳐나는 영화가 바로 <웰컴 투 동막골>이다. 아이처럼 막 사는 고을이란 뜻으로 풀어볼 수 있는‘동막골’이란 공간은 전쟁의 비극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순수함이 살아 숨 쉬는 동화 같은 공간이면서 또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마을이란 점에서 판타지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이미 연극으로 공연된 장진의 재기발랄하고 유머러스한 코드를 살리면서도 박광현 감독 나름의 독특한 영상미를 가미해서 인간에 대한 깊은 휴머니즘을 재창출해내고 있다. 7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선택한 이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여일(강혜정)의 “뱀에 물리면 마이 아파” 등 순수한 강원도 사투리에 매료되기도 하고, 곡식 창고에 떨어진 수류탄으로 인해 주민들의 양식이 팝콘처럼 튀겨져 하늘로 치솟아 올라 눈이 되어 내리는 장면을 기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모여 대립하지만 결국 이데올로기가 아닌 서로 화합하고 공존하는 법을 찾아가는 남과 북, 미군의 모습을 보면서 정치적인 이념이나 명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정과 신뢰가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장 감동적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단된 우리의 현실이 동화 속의 판타지로 뒤바뀌는 꿈같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적 같은 일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만남의 광장>에서 동막골이 아닌 청솔리로 이동해서 나타난다. 분단 상황이라는 비극적인 민족의 현실을 시종일관 코미디의 문법을 따라 풀어내고 있는 이 영화는 엉뚱하지만 감동과 교훈을 던져준다. 섬마을에 살고 있는 순수하고 조금은 어벙한 청년인 영탄(임창정)은 80년대 초, 교사가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지니고 부모의 가산을 털어 서울로 올라온다. 하지만 돈을 강탈당한 후 공교롭게 경찰서까지 오게 된 그는 ‘교육대’라는 단어에 혹해 삼청교육대에 지원하게 된다. 훈련 중 우연찮게 부대를 이탈한 영탄은 새로 부임하는 장근(류승범)이 지뢰를 밟는 바람에 집성촌인 청솔리 주민들에게 교사 대접을 받으며 머무르게 된다. 그 이후, 영탄은 자신이 첫눈에 반한 선미(박진희)와 그녀의 형부인 마을 이장(임현식) 사이를 의심해서 두 사람의 뒤를 캐다 마을의 위험한 비밀을 눈치채게 된다. 그 비밀은 바로 분단 전에 한 핏줄이었던 마을 사람들이 지하세계에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 지금껏 만남을 지속해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가벼운 웃음으로 치환하여 시종 코미디적인 상황으로 그려내는 것에 관객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땅굴의 존재를 군인들에게 들키기 전까지 그들이 만남의 광장에서 벌이는 해프닝들을 통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수긍하게 된다. 이 영화는 동막골의 순수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그 소박하고 순수한 공동체적인 습성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곧 청솔리 주민들의 땅굴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청솔리의 작은 땅굴은 거대한 이데올로기조차도 하나의 핏줄은 둘로 가를 수 없으며 결국엔 하나로 통일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조국의 미래를 상징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남북의 현실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그대로인 채 60여 년의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다. 그렇게 서로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북한에 대해 물어보면 젊은 나이에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은 김정은에 대한 이야기와 빨간 마후라를 한 아동들이 일사분란하게 율동을 하는 장면, 사람들이 숨도 쉬지 못한 채 굶어 죽어가는 비극의 현장으로만 방점을 찍어 말한다. 하지만, <량강도 아이들>을 본다면 그런 생각은 조금씩 깨어질 것이다. 체제와 환경은 비록 다를지라도 그곳에도 엄연히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지만 꿈을 꾸는 아이들이 존재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이 위치한 량강도. 그곳의 한 시골 마을 아이들은 지금은 잊혀진 70, 80년대 우리네 삶을 떠올려 보게 만든다. 그리고 솔직히 가난하고 아프지만 친구와 가족의 사랑과 도움으로 극복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로서의 영화의 구성도 그 아이들의 모습처럼 조금은 진부하다. 그러나 탈북자 출신으로 널리 알려진 정성산 감독이 무려 7년여에 걸쳐 만든 이 작품은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다룬 그의 뮤지컬 <요덕스토리>처럼 북한을 정치적, 이념적 대상으로 적대적인 시각에서 그리지 않아 편안하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남한에서 풍선을 타고 날아 온 움직이는 로봇 장난감을 두고 벌어지는 보천보 인민학교 아이들의 순수하고 때론 치열한 다툼을 보노라면 애잔함과 아울러 모르고 있었던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볼 것을 권한다. 비록 가난하고 엄격한 사회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분명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는 작은 것에 대한 간절함이나 고마움을 아직 지니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남한은 여전히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북한은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에 나오는 승철(박정범)처럼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으로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탈북자를 수없이 만들어 내면서도 그들만의 체제를 공고히 유지한 채 그렇게 지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전쟁을 경험하여 북한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지닌 세대와 전쟁 후 이미 군사분계선이 굳어진 상황에서 태어난 세대 사이에 이데올로기에 대한 다른 시각을 지닌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약의 차이가 분명함을 다음 두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책임수사관(이영애)을 등장시켜 남북 병사 간에 벌어진 비극적인 살인 사건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반면, 계윤식 감독은 <꿈은 이루어진다>를 통해서 남한의 우월의식을 밑바탕에 깔고 북한 초소의 상황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분단된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있는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병사들이 총부리를 겨눈 채 서로를 감시하고 있는 공간. 그 속에서 젊은 남북의 병사들이 우정을 나누게 된다는 포맷을 공통적으로 지닌 두 영화는 그러나 비극과 희극으로 분명하게 엇갈린다. 먼저 <꿈은 이루어진다>는 2002년의 월드컵 상황에서 “축구엔 국경이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축구광인 북한 43GP의 1분대장(이성재)과 분대원들이 수색 중 멧돼지를 쫓다 국군과 마주치면서 사건이 진행된다. 이는 이수혁 병장(이병헌)이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밟아 북한군(송강호)의 도움으로 구출되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장면과도 닮았다. 그 이후 남북의 젊은이들은 경계선을 무시하고 매일같이 만나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거나 권총으로 호두를 깨서 먹고 총알로 공기놀이를 하면서 서로의 우정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계윤식 감독이 직선적인 내러티브를 따라 순행적인 이야기 구조를 차용했다면 박찬욱 감독은 추리적인 요소를 이야기 속에서 구현하고 있어서 긴장감을 다르게 한다. 체제 내에서 허용되지 않는 무전기를 개조해서 남한의 월드컵 팀을 응원하는 북한군 병사와 판문점 내 JSA에서 북한 초소를 왕래하며 친형제처럼 가까워져 가는 남북한의 병사들. 결국 그들의 우정은 상관에게 발각되면서 탈출과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하지만, 이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이념과 체제의 경계선은 역사적, 물리적인 분단은 가능케 할지언정 세대가 변할수록 커져가는 하나의 민족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가로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영화 속에 표현된 작품이 바로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을 다룬 문현성 감독의 <코리아>이다. 현정화(하지원)와 리분희(배두나)의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여 중국을 꺾고 우승을 거머쥐게 되는 기적을 다룬 내용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그 감동이 더하다. 탁구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만 공을 주고받았던 현정화와 리분희. 마치 분단된 남한과 북한을 상징하듯 두 사람은 늘 국제경기에서 라이벌 관계다. 그러나 남북이 하나 되어 나선 세계대회. 처음에는 오랜 시간 정치적, 사회적인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지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보듬은 뒤 한 팀이 되는 데에 장애는 없어진다. 억지스럽게 감동을 만들기 위한 장치들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통일된 조국의 상징인 ‘한반도기’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기적과 같은 우승을 거둔 두 사람이 감동의 포옹을 나누는 장면 위로 흐르는 ‘아리랑’은 그저 뭉클하기만 하다

그러나 북한 핵개발과 한미 군사훈련으로 분단의 긴장이 더해 가는 지금, 우리의 현실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고 그로 인한 이념적인 갈등마저도 존재한다. 2003년, 김동원 감독은 다큐멘터리 <송환>에서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한 화면으로 그려내었는데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는 양심수와 빨갱이라는 극단적인 단어로 나뉘었다. 그런 점을 보더라도 분단은 단순히 남과 북을 가르는 하나의 경계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자리한 이데올로기가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찌됐건 우리는 하나의 핏줄로 엮어졌으며, 같은 언어와 유구한 문화를 공유한 채 지금껏 함께 살아온 같은 민족이다. 그래서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조국은 반드시 하나가 된 통일조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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