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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학교도서관 분투기]명예사서 이전에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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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2-06 20:37 조회 8,25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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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 첫 발령을 받아 도착한 초등학교의 도서실은 마치 놀이동산에 온 듯 원색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둥근창이 달린 초록 출입문, 알록달록한 벽지, 앙증맞은 3단 서가, 노랑과 파랑으로 이루어진 수업 공간, 순간 ‘이곳이 정말 도서실 맞나?’ 생각하며 어리둥절했다. 도서실을 본 후 아이들과 즐거운 학교 생활, 신나는 도서실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 다음날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한 다음날 복도 저편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속에서 시장에서나 들을 법한 웃음소리가 섞여져 들려왔다. 도서실에 가보니 어느새 문은 열려 있었고 한 무리의 어머니들이 간식을 앞에 두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대출・반납 코너에 앉아 계신 어머니는 연신 바코드를 찍고 계셨다. 들어가는 순간 서로 어색한 눈으로 인사를 나누었고, 곧이어 난 이 어머니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이 도서실을 운영해온 실질적인 터줏대감인 어머니명예사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는 도서실에서 이야기를 하며 마치 커피숍에 온 듯한 자유스러운 모습을 가진 어머니들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둘로 나뉜 도서실 터줏대감들
첫 발령인 만큼 학교도서관에 대한 실질적인 운영이 전무했기에 도서실 사정에 대해 어머니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수서, 도서정리, 대출・반납 등 모든 것이 배운 것과 다르게 편의대로 운영되고 있었다. 시간을 가지고 하나씩 바꾸려 노력하고 있는 동안 가장 거슬렸던 것은 대출・반납 코너에 대한 어머니들의 집착이었다. 배가나 도서실 정리가 아닌 쉬운 곳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는 어머니들이 많았기에 항상 잡음이 일어 ‘왜 이들이 학교에 찾아올까?’라는 원칙적인 생각을 해봤다. 또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어머니 명예사서들이 있을 경우 어떠한 불편함이 있는지 사전조사를 실시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도서실 이용자 중 어머니의 자녀에게만 더 관심을 가져준다.’, ‘너무 많은 어머니들이 항상 이야기를 나누셔서 도서실 이용이 불편하다.’ 등 여러 문제점들을 토해냈다.

학교도서실 운영의 가장 핵심 고객인 아이들이 뒷전으로 밀린 것이 너무 안타까워 중대한 결심을 하였다. 바로 고학년 학생들을 활용한 도서반을 만드는 것이다. 고학년을 대상으로 추천서와 면접을 통해 모두 열 명의 1기 도서반원이 탄생하였다. 도서반원에게는 대출・반납 방법 및 배가에 대한 교육을 통해 도서실을 주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도서반이 운영을 시작하자 어머니들은 ‘도서반원 아이들이 이 도서실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곧 어머니들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자신들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특히 대출・반납 코너에 대한 아이들의 잠식은 정말 놀라울 만큼 빨랐다.

한 달이 지나자 두 부류의 어머니 명예사서로 나뉘어져 서로 불편한 도서실 공간을 공유했다. 정말 도서실에 필요한 봉사를 하러 오신 어머니들과 자신의 자녀에게 보여주기 위해 학교에 상주하는 어머니들로 나뉜 것이다. 봉사를 하러 오신 어머니들은 묵묵히 배가며 도서실 정리를 하는 반면 다른 부류의 어머니들은 학교에 올 수 있는 명분을 빼앗긴 것에 대해 말이 많았다. 심지어 교장선생님께 찾아가 하소연하는 어머니까지 생기게 되었다. “지금까지 고생하신 어머니들의 역할을 한순간 없애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어머니들이 우리 도서실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한번 고민해보자.”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어머니들이 도서실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면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될까?’고민을 하였다.

명예사서 어머니들이 달라졌다
이러한 고민 끝에 만들어진 것이 ‘천동Bookclub’이라는 어머니 독서토론 동아리다. 독서토론 동아리를 통해 도서실에서 어머니들의 책 읽는 모습을 아이들이 지켜볼 수 있고, 또한 어머니들에게는 확실한 학교 방문의 목적 제공이라는 일거양득 효과를 얻을 수 있었기에 학교 안팎으로 호응이 좋았다. 하지만 첫 독서토론은 대실패로 기억된다. 책을 선정하여 읽고 주제를 찾아 토론을 하려 했지만 아직은 서로 의견을 나누는데 어색했는지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두 시간을 말없이 보내다 끝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어머니들이 토로했던 가장 큰 문제는 책을 읽고 오는 것조차 버겁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독서토론 도서는 의미가 담긴 동화책을 선정하였고, 독서토론 시작 전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길게 가져 서로 간의 어색함을 없앴다. 그러자 두 번째 독서토론부터는 삐그덕거리지만 멈추지 않고 토론이 진행되었다. 한 달에 두 차례 독서토론이 진행될수록 어머니들의 모습도 달라졌다. 단순히 자신의 자녀들을 기다리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다음 독서토론 자료를 찾거나 독서토론 도서선정을 위해 도서실을 적극 활용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대출․반납 코너만 고집했던 어머니들이 북트럭에 쌓인 책들을 스스로 짬짬이 정리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느새 도서반원들과의 역할 분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충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독서토론 동아리를 운영하고 다섯 달 후 어머니들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모았다. 상대적으로 문화혜택이 적은 지역공간에서 아이들을 위해 독서토론 도서를 바탕으로 인형극을 만들어 공연하는 기획을 하게 되었다. 모두들 처음 하는 것이라 서툴렀지만 거짓말처럼 여러 아이디어들이 튀어나왔다. 교장선생님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학교예산을 편성하여 인형극 무대 프레임과 무선마이크를 구입하였고, 어머니들은 직접 손으로 바느질을 하며 인형을 만들었다. 물론 집에 있던 재봉틀까지 가져오는 적극성을 발휘하여 무대소품이며 인형 모두를 긴 수작업 끝에 완성시켰다.

대본 각색부터 효과음까지 일일이 손수 준비하여 만든 첫 번째 인형극인 「으악! 도깨비다」를 공연한 후 더 이상 이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꺼려하는 명예사서가 아닌 친절하고 자상한 이웃 어머니들로 아이들에게 기억되게 되었다. 현재 ‘천동Bookclub’은 매월 1회 독서토론을 운영하고 있으며,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를 비롯한 세 편의 인형극을 제작하여 수차례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이를 통해 많은 어머니 회원들이 독서 및 도서실 관련 행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자녀들의 독서토론에도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도서실과 어머니들과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존을 필요로 한다. 중고교와 달리 학생들의 역량만으로는 진행하기 힘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알지 못했던 나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도서실을 운영하려 하였기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힘들고 어렵고 귀찮은 어머니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알맞은 역할분담을 통해 도서실이 더욱 발전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겠다 다짐한다. ‘천동Bookclub’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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