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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_ 여름휴가 때 섹시하게 세상을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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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8-07-03 11:02 조회 17,5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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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때
 
섹시하게 세상을 바꿔보자!
 
 
김경집 인문학자
 
 
 
2018년은 ‘책의 해’다. 그러나 이를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책 만드는 이들과 책 좀 읽는다는, ‘일반 독자’라는 희귀 종족들끼리 아는 정도라면 지나친 비하일까? 2015년에 인천광역시는 책으로 하나 되는 세상을 표방하며 인천을 ‘세계 책의 수도’로 선포하고 여러 ‘행사’들을 기획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채 지나갔고, 심지어 인천 시민들조차 냉소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 당국은 만만치 않은 예산을 대부분 이벤트들에만 퍼붓고 정작 시민들의 책 읽기에는 무심했으며, 차가운 독서 풍토와 환경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2018년 ‘책의 해’ 또한 당사자들끼리의 찻잔 속의 미풍(‘찻잔 속의 태풍’은 고사하고)에 그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예전에는 책을 통해 세상에 대해 알고 필요한 정보를 얻었지만, 지금은 넘치는 게 지식이고 정보며 접근 통로도 다양하다. 게다가 영상 정보들은 직관적이어서 머리 쓸 일도 없으니 누구나 쉽게 소비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소식들은 인터넷 포털로 접할 수 있다. 또 오락적인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책 읽을 마음이 생길 리 없고 굳이 책 읽지 않아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그저 출판사와 저자들만 ‘그리운 옛날’을 한탄할 뿐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되지만, 분명한 것은 책이나 신문을 읽지 않고 살면 노예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신분제에 따른 노예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해서 살면 그게 노예의 삶이다. 포털을 통해 소비되는 뉴스는 신문과 달리 다양한 시각을 균형 있게 전하지 못한다. 책을 외면하고 영상으로 소비하는 지식은 ‘나의 속도’와 ‘나의 생각’이 개입하지 못하고 ‘제공자의 속도와 생각’에만 따르게 된다. 그렇게 길들여지면 나의 판단과 행동은 줄어들고 강자의 명령에 따라 살게 된다. 그러면 먹을 것은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적당히 즐기고 누리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은 아니다. ‘책의 해’에 차라리 “책 읽지 말자.” “책 읽지 말자, 적극적으로!” “책 읽지 말자, 노예로 살고 싶으면” 식의 시리즈로 한 달 간격을 두고 일종의 티저 캠페인을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휴가지에서 ‘남 보란 듯’ 책 읽기
 
한국인들은 여행지에서 금세 표 난다. 늘 바쁘다. 노는 것도 바쁘다. 여행지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맛난 것 먹기에 바쁘다. 느긋하게 앉아 풍광을 감상하는 일도 드물다. 그러니 여행지에서 책 읽는 건 언감생심이다. 여러 해 전 휴양지 발리에 갔을 때 해변 코티지 아래 선탠베드에 누워 책 읽고 있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부러웠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그 모습 보면서 ‘저런 븅닭! 놀러 와서 책 읽을 거면 집에서 읽지’라고 생각하며 혀 끌끌 찰 사람 별로 없다. 누군가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연대’다. 머리띠 두르고 주먹 날리며 소리치는 것만 연대가 아니다. 연대도 혁명도 섹시하게 이룰 수 있다.
 
이번 여름휴가 때 세상을 조금 바꿔보자. 휴가 때 책 한 권 들고 가자. 여기에는 기본적인 세 가지 조건이 따른다. 첫째, 반나절만 읽자. 우리의 휴가는 짧다. 기껏해야 사나흘 남짓. 짧은 휴가 기간 내내 책만 읽는 건 휴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러니 딱 반나절만 읽자.
 
둘째, 반 권만 읽자. 아무리 재미있어도 반에서 접어야 한다.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그 다음이 궁금해 본 적 거의 없다. 그냥 계속해서 읽으면 된다. 그러나 절반에서 접으면 그 다음이 궁금하다. 계속해서 혹은 이따금 그 뒤가 궁금하고 나름대로 추론한다. 휴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나머지 반 권을 읽는다. 그런데 그 결말이 내 추론과 비슷하면? 나는 천재다! 작가의 생각을 읽어낸 것이니. 그 결말이 내 추론과 전혀 다르다면? 역시 나는 천재다! 작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내가 상상했으니. 그렇게 다를 경우에는 그냥 다른 것에 그치 지 말아야 한다. 분명 읽었던 부분 이후 어디선가 갈라졌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어떤 공통의 인자가 담겼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는 어떤 생각의 갈래를 펼쳤을까? 좁은 차이에서 그 공통 인자의 해석이 갈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머지 큰 차이까지 짚어 보면 ‘다르되 비슷한’ 생각의 영토가 생긴다. 그게 바로 ‘사고의 적분’이다. 이런 식으로 읽을 때 또 다른 좋은 점은, 같은 책이고 같은 사람인데 일상적 공간에서 읽은 것과 비일상적 공간에서 읽은 것이 해석도 느낌도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책과 나의 ‘양면성(dual aspects)’을 누리는 것이다. 생각과 느낌의 새로운 확장이다.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이 가장 중요하다. 반드시 남 보는 데서 읽어야 한다. 해변의 파라솔 아래에서, 계곡에 발 담그며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서 읽어야 한다. 만약 호텔이나 펜션에서 묵는다면 방에서 읽는 건 반칙이다. 로비나 옥외 테라스 혹은 카페에서 읽어야 한다. 심지어 책이 눈에 밟히지 않더라도 책 읽는 흉내라도 내며 펼치고 앉아 있으면 된다. 누군가에게 책 읽는 모습만 보여도 반쯤은 미션 완수다. 다른 사람이 내가 책 읽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보기 좋네. 나도 다음 여행에는 책 한 권 들고 가서 잠깐이라도 책을 읽어 봐야겠다’라는 생각만 들어도 성공이다. 그것은 이미 연대고 혁명이다.
 
 
지자체도 조용히 혁명할 수 있는 기회
 
책 읽는 도시를 표방하는 곳이 여럿이다. 대표적인 곳으로 군포, 김해, 순천, 강릉, 전주 등이 있다. 이곳은 단체장들의 관심과 배려, 지원도 가볍지 않다. 또한 책과 관련된 많은 행사를 열기도 하고 시민들의 자부심도 크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책과 시민들의 삶이 보다 밀착되고 심화되는 단계까지 진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순천, 강릉, 전주 등의 도시에서 시도해 봄직한 일을 제안해 본다. “우리 도시를 찾는 분들이 여러 곳에서 책 읽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린 인증샷을 보내주시면 공영주차장 2시간 무료주차권이나 커피를 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보고 공짜 선물을 받고 싶은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제안 자체가 반갑고 행복해서 호응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 도시들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책 한 권씩 들고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책 읽기 관련 제안을 한 도시가 공식적으로 다른 지역 시민들에게 책 읽기를 외치면서 정작 자기 도시 시민들의 책 읽기를 외면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기 도시를 위해서라도 책 읽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보이게 할 것이다. 그런 모습을 그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이 본다면, ‘와, 이 도시의 시민들은 틈틈이 책을 읽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 도시와 시민들에게 호감을 갖고 경의를 느낄 것이다. 그런 이벤트가 정착되고 3년쯤 지나면 그 도시는 저절로 ‘책의 수도’가 될 것이다.
 
세계 책의 수도를 표방했던 인천광역시의 뻘짓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시민들조차 냉소와 무관심으로 대응하게 한 책임의 절반 이상은 도시 당국의 무지와 과대망상 혹은 막연한 기대에 있다. 기껏해야 휴가지에 이동도서관이나 작은 책장을 마련하는 게 그리 실효성이 없다는 걸 이미 알 것이다. 그런데도 그나마 책과 문화에 관심이 있는 도시들이 택하는 방식이 그런 식이고 그 이상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고는 사용자가 별로 없다거나 유실되는 책이 많다거나 관리 인력 등의 문제점들을 따지며 그나마 유야무야 하다가 사라지는 일도 많다. 그런 식으로 엉성하게 시도하면 오히려 다음에는 아예 그런 시도도 하지 않게 된다. 각 도시 당국은 돈만 퍼붓고 외면받는 ‘공무원적 사고’에서 벗어나, 큰돈 들이지 않고도 모두가 행복하게 참여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문화를 점진적으로 진화시킬 수 있는 섹시한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요즘 어지간한 도시치고 호수공원이나 숲공원 없는 곳 별로 없다. 그런 곳에는 시민들도 많이 찾는다. 그런데 그런 곳에 벤치는 있지만 1인용 의자는 거의 없다. 호수를 따라 혹은 나무 아래 1인용 의자를 마련해 보자. 팔걸이에는 작은 구멍을 뚫어 텀블러나 컵을 꽂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좋다. 등받이에는 책 그림을 그려 놓는다. 그곳을 찾는 시민들이 그 의자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아, 저곳은 책을 읽는 곳이구나. 나도 다음에 여기에 올 때는 책 한 권 들고 와서 잠깐이라도 저기에 앉아 책을 읽어봐야겠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면 흐뭇하고 뿌듯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연대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도 세상과 삶을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이번 여름휴가 때 책 한 권 들고 가서 ‘남 보란 듯이’ 책을 읽어 보자. 그런 움직임이 여러 곳으로 전파되고 그 확산에 서로 자극을 받을 때 책 읽는 시민들이 늘어날 것이다. 백날 천날 ‘책의 해’니 ‘책의 수도’ 선포니 떠들어봐야 ‘그들만의, 소리도 없고 반향도 없는,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기 쉽다. 휴가 가는 시민도 휴가지도 함께 멋진 혁명을 이뤄가는 섹시한 연대로 세상을 바꿔보자. 출판사와 협회 들도 책 팔리지 않는다고 징징거리지만 말고 가슴과 머리를 진동시키는 아이디어와 기획을 모아 하나씩 시도해 보자.
 
책을 읽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거의 지장이 없다. 그러나 그런 삶은 노예의 삶이다. 시키는 대로 일만 하면 먹을 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주인의 삶은 아니다. 우리 모두 내 삶의, 그리고 우리 사회의 주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 중요한 도구가 책이다. 읽건 읽지 않건 그건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좀 더 멋지게 선택하고 실천하면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일단, 이번 휴가부터 실천해 보자. 조용하지만 섹시한 혁명으로!
 
 
- <학교도서관저널> 2018. 7+8월호(여름방학 합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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