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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성교육 시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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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1-03-17 15:05 조회 18,69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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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성교육 시간을 기다립니다




 
성교육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이들이 등교할 때 보건실 문을 빼꼼히 열고, 머뭇거리며 “오늘 9반 수업 맞지요?” 묻고, 그렇다고 확인해 주면 “이따가 뵐게요!” 하이톤으로 인사합니다. 복도에서 만나는 어떤 아이들은 그 주간에 공부하기로 예고한 주제를 기억하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합니다.


시간표에 없고, 평가도 없으며,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도 않는 성교육이지만, 열심히 모둠 활동을 하고, 친구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며, 다름과 같음을 확인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러고는 제가 걷어 갈 줄 알면서도 수업 활동지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냅니다.


이에 반해 교사는 성교육 시간이 부담스럽습니다. 경험과 지식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수업할 때마다 상당한 부담감이 찾아옵니다. 교사가 갖는 부담감의 원인은 본문에서 밝혔듯이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문제는 교육 시스템과 학교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인사이동으로 새로 옮겨간 학교에서 어떤 교육관을 가진 관리자(교장·교감)와 교무기획부장 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학교 학생들의 성에 대한 배움이 달라집니다. 관리자, 교사와 학부모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바른 학교 성문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학교도 있지만, 관리자가 무관심하고 무책임하여 당연히 해야 할 최소한의 성교육조차 하지 않는 학교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현실이 이런 까닭에 학교 간 성교육 수준과 성문화는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저는 어떤 경우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체계적인 보건 교육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며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강하게 요구할 때도 있습니다.


학교 현장의 성교육 전문가로서 저는 학교 성교육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모든 교과 교사가 교육과정 안에서 성교육을 대학 과정에서부터 배워야 하고, 교원임용시험에서도 필터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를 적시에 수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부에 성교육지원센터를 두고 교육 자료를 계속해서 학교로, (제대로 성을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된 사람들의) 사회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여성가족부나 양성평등교육원에서 제작·배포한 성평등 교육 관련 자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니 여성계의 입장이 도드라집니다. 학교에는 과학적이고 윤리적이며 균형을 잃지 않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성교육 자료가 절실합니다.


아이들이 평생 안전하고 아름답게 성을 누릴 수 있는 바른 성 가치관 형성을 위한 성교육은 학교 안의 교사 한 사람이 지고 가야 할 짐이나 몫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와 국가가 나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 만들고 축적해 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n번방 사건’ 이후 몇몇 관련 기관에서 디지털 성범죄 예방에 관한 자료를 각 학교로 보내왔지만, 실제 수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수업자료가 아니라 참고자료이거나 코로나-19로 늘어난 원격 교육을 염두에 둔 듯한 영상자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영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배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학교 성교육이 지금껏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같은 교육 시스템과 학교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 탓입니다.


지난해, 본교 학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생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교사로서 교실에서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는 추호의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배움이 일어나면서 모든 학생이 반짝반짝 빛날 때입니다.” 교실에서 가장 기쁜 순간은 모든 학생이 반짝반짝 빛날 때일 것입니다. 몇몇이 아니라 대다수 학생에게 배움이 일어나면서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발견하며 반짝일 때 더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모두를 반짝이게 하는 것이 교사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자리에 앉아 학생 활동지를 한 장 한 장 읽으며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깊이 사유하고 마음을 열어준 아이들이 고마워서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며 더 좋은 수업을 디자인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새 힘을 얻습니다.


교실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비로소 배움의 장소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교사가 있는 힘껏 교실을 어떠한 질문도 할 수 있고, 어떠한 의견도 묻히지 않는 안전한 공간, 모든 학생이 교사의 말과 시선에서 존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모든 성교육은 실패가 없습니다. 비록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과 학교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교사를 지치고 힘들게 하며,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하지만, 배움이 일어나면서 모든 학생이 반짝반짝 빛날 때를 떠올리면 지칠 수도, 대충 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선생님,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 몰라요. 존중 성교육 책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셀 수도 없어요.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성교육을 정말 꼭 하고 싶어요.”

“엄청 겁을 냈었고,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모든 성 수업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음란물 수업은 더했던 것 같아요. 활동지 마지막에 ‘음란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을 넣고 연수 때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일곱 가지를 적으라고 했는데, 평소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았던 남학생이 정말 열심히 적더라고요. 너무 집중을 잘해서 그 아이 이름을 오늘은 부를 일이 없었어요! 괜히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선생님, 한 학생이 성 수업 첫 시간 소감에 ‘다시 한번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길과 생각을 다시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어 주었어요. 수업하길 잘한 것 같아요!”


이렇게 이제 막 성교육을 시작하는 많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눈빛이 배움과 사유로 반짝반짝 빛나는 교실에서 벅찬 기쁨을 느껴 보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성교육이 불편한 교사를 위한 서로 존중 성교육』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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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성교육 #성인지감수성 #학교도서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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