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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유

그림책공감수업.jpg
 
 
머리말


매일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유




“선생님, 오늘 졸업식이잖아요. 오늘도 그림책 읽어요?”
“에이~ 졸업도 하는데 오늘은 읽지 말아요.”
수군거리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한 명 한 명 눈을 바라보았다.
“졸업이니까 마지막 그림책을 읽어야죠. 선생님이 읽어주는 마지막 그림책이에요. 왜 이 책을 마지막으로 읽어주고 싶었을까?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겠죠? 우리가 헤어지는 날에 읽는 마지막 그림책, 나름 역사적인 책이에요. 꼭 새겨듣길 바랍니다.”
교탁 속에 미리 넣어 놓았던 책을 슬며시 꺼내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이제 체념했다는 듯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마지막 책’이라는 미끼가 통했나 보다. 작가와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책장을 펼쳤다. 그림책에는 면지에도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있다. 면지 그림도 살펴보고, 이리저리 아이들과 추측도 해본 후 책 속으로 들어간다. 두 페이지가 넘어가기도 전에 아이들은 책의 내용에 몰입해 안타까움의 탄성을 토해냈다. 졸업식은 이렇게 시작됐다.

매일 아침 8시 40분. 아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아니, 내가 아니라 내가 들고 있는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나는 교탁 옆에 서서 그림책을 아이들이 잘 볼 수 있게 펼쳐서 보여주며 책을 낭독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책의 주인공이 되어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이 시간을 무척 좋아하고 있음을 느낀다. 5년이 넘도록 매일 그림책 읽어주기를 실천했다. 그 사이 성대는 고장이 나서 삐걱거리지만 책 읽어주기는 현재진행형이며 교단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할 생각이다.



책 읽어주기를 하기 전에는 아침 독서 시간을 운영했다. 교실에 들어오면 교사나 학생들이나 책부터 펼치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서 안타까웠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안다면 저러지 않을 텐데….’ 어떻게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도 함께 독서에 빠져들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책을 읽어주자’ 결심했다.
1학기에는 그림책으로 시작해 차츰 글밥이 많은 책으로 읽어줬다. 내용이 긴 책을 다 읽어주지 못하면 결말을 알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또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 어려운 시리즈들도 읽어주곤 했는데,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가 많은 ‘건방이’ 시리즈를 읽어주고 며칠 후에 한 아이의 인사는 “선생님 건방이 시리즈 새 책 나왔는데 아세요?”였다. “오늘 가져왔는데…” 하니 그 녀석은 좋아서 입이 쫙 벌어졌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선생님, 이 책 읽어주세요!” 하며 책을 가져오는 일도 생겼다. 아이가 가져온 책을 읽어줄 때는 이 책은 누가 가지고 왔는지, 얼마나 유명한 책인지,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떤 게 있는지 등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장황하게 설명한 다음 읽어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가져와 읽어 달라고 성화다.
한 권의 그림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15~20분이다. 어떤 책은 읽고 난 뒤에도 신경을 잡아당겨 몇 번이나 더 들춰보게 한다. 뜬금없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들을 만나자 ‘그림책은 아이들이나 보는 책’이라는 선입견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다 말고 눈이 시뻘게져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림책을 읽으며 치유받은 것은 나 자신이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줘야 교육적 효과가 크고 잔소리하는 횟수를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주제별 읽기’였다. 특히 ‘자존감 높이기’와 ‘독서 습관’은 늘 학기초에 읽어주는 주제들이다. 주제별로 책을 읽어주자 잔소리하지 않고 책 속의 이야기만 들려주어도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주제별 책 읽기로 아이들은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워갔다. 작년 1학기에는 ‘자존감’, ‘독서 습관’, ‘친구 관계’, ‘가족’, ‘환경’, ‘인권’ 등의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줬다. ‘친구 관계’까지가 학기초에 서로 마음을 다지는 과정이라면, 과학의 날 즈음에는 ‘환경’을 주제로 책을 읽어주고, 5월 가정의 달에는 ‘가족’을 주제로 책을 읽어줬다. 현충일, 5·18 광주항쟁일 등 역사적인 날과 연결해 ‘인권’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하루 한 권, 그림책 공감수업』은 5년간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준 기록을 모은 것이다. 내가 담임을 맡은 학급이 고학년이라 여기에 수록된 그림책이 고학년에 맞는 책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읽어준 책들은 소장하고 있는 책들 중에 고른 것이라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참고용 목록이라는 점을 먼저 밝힌다. 이 책을 읽고 선생님이나 학부모께서 그림책 읽어주기를 실천하고 싶다면 도서관에 있는 책으로, 학년 수준에 맞는 책으로 목록과 주제를 만들어 읽어주면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림책을 비교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것이다. 나의 경험과 아이들의 이야기가 책을 읽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앞서 졸업식 날 읽은 책은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맥 바넷, 시공주니어)였다. 그림은 단순하고 서사도 많지 않은 책이라 아이들은 표지만 보고 어린애 취급하는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샘과 데이브는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발견하기 위해 땅을 팠다. 계속 땅을 파다가 바로 옆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기 전에 중단하고 만다.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땅을 팠다면 얻을 수 있는 결실이었다. 하지만 온종일 땅만 파느라 고생한 샘과 데이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라고 말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난 이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전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포기하고 싶을 때, 계속하기가 정말 힘들 때, 이 책을 기억하고 ‘조금만 더’ 용기 내기를, 결실을 얻지 못하고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은 의미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랐다.



내게 주어진 교단생활이 그리 길지 않다. 교단을 떠나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림책 읽어주기를 전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유난히 더운 폭염의 나날에도 머릿속은 책을 쓰고, 읽는 일로 꽉 차 있었다. 이렇게 책이 나오고 나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진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평생 독자로 살아온 사람이 ‘책 쓰기’라는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주변에서 ‘할 수 있다’라고 응원해주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의 지지가 없었다면 몇 글자 쓰고 말았을 것이다. 원고를 살펴보고 격려를 해준 조카와 친구들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학교도서관저널과 이은진 편집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 책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하고 감사하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서 보신다면 어떤 말씀을 할지 망연히 올려다본다, 파란 하늘을.



2019년 6월

이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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