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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존중 사전? 반박불가 교육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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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02-18 16:48 조회 29,79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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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리뷰_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 2019.02.12


‘청소년 마음 존중 사전’이라고 봐야 할 듯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



급식체라는 것이 있다. 청소년들이 주로 소셜네트워크에서 사용하는 문자체며 일상적인 말을 비상식적으로 줄여서 사용한다. 스마트폰 문자 사용이 많은 10대들의 유희라고 볼 수 있다.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원래 단어의 초성만 따서 쓰는 경우다. 가장 널리 쓰이다 보니 이젠 웬만한 어른들도 아는 ‘ㅇㅈ’은 ‘인정(한다)’이라는 뜻이다. 이보다 훨씬 복잡한 해석이 필요한 급식체 단어도 있다. ‘ㅇㄱㄹㅇ’은 ‘이것레알’이라는 단어의 초성인데, 여기서 ‘레알’은 ‘real’의 이탈리아식 발음이다. ‘진짜’를 강조할 때 쓰는 급식체다. ‘ㅃㅂㅋㅌ’도 유명하다. ‘빼박캔트’의 초성으로, ‘빼지도 박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자 그럼 이걸 한번 맞춰보시라. ‘ㅂㅂㅂㄱ’.


아이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며 급식체를 외우려고 애를 쓰는 어른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그것만은 말리고 싶다. 이유가 있다. 급식체의 발생 이유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급식체는 본질적으로 ‘배제의 언어’다. 즉, 급식체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비롯해 어른들은 알아듣기 힘들게 하는 것이 애초의 목적이며, 이를 통해 또래 집단의 결속력을 확인하고 강화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어른들이 이 말을 알아듣는 순간, 급식체는 존재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아이들로선 어른들의 침범이 그리 큰 문제도 아니다. 어른들이 알아듣기 시작하면 또 다른 것을 만들어 쓰면 된다. 그러니 굳이 급식체를 외우는 것은 매우 미련한 일이다. 급식체 외에도 서로 생김새가 비슷한 자음과 모음을 바꿔 사용하는 ‘야민정음’, 아재들이 자주 하는 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땅체’, 자동 번역기의 엉망진창 단어배열을 흉내 내는 ‘왈도체’, 오타쿠의 말투를 차용한 ‘오덕체’… 한도 끝도 없다. 다 큰 어른이 이것을 모두 외워 아이들과 소통한다고? 어림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과의 소통을 포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급식체를 공부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무시하는 건 가장 나쁜 접근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들만의 언어 속에는 그들만의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할 수는 없지만,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들, 급식체의 행간에 담기는 그들만의 생각들, 바로 이런 것들 말이다. ‘그게 뭐냐’는 식으로 무조건 사용을 금지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가장 나쁜 접근이다. 청소년들을 인격체로서 존중하며, 그들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에는 마음으로 화답하는 것이 옳다.



급식체.jpg
 

광양백운고 학생들과 황왕용 사서 교사의 공저 『급식체 사전』


급기야 『급식체 사전』(학교도서관저널, 2018, 10)이라는 책까지 나왔다. 이 책은 10대들이 자주 쓰는 급식체 단어들을 정리해 각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어떤 상황에 쓰이는지 알려준다. 이 책은 황왕용 사서 교사와 광양백운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공저했다. 실제 학급에서 진행했던 ‘급식체 사전 만들기 수업’의 내용과 결과물을 엮었다.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과 친구들이 자주 쓰는 급식체를 정의해 보고, 급식체를 소재로 부모님과 대화하며 그 내용을 정리해 오는 과제를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엄마 아빠가 10대 때 유행했던 말과 문화를 접하고, 요즘 10대들의 것과 비교해 보는 체험을 했다. 즉 급식체를 매개로 자녀와 부모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직접 실행해본 것이다. 이 수업에 참여했던 한 학생은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급식체 사전을 만들면서 부모님과 오랜만에 웃음이 묻어나는 대화를 나누었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연애 시절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 엄마 아빠에게 이런 새로운 면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중략) 나에게는 그때 그 하루가 소중한 추억이 되었고, 부모님도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이 다 나쁜 뜻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셔서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급식체 사전』은 내용이 제목을 배반한다는 면에서 아주 독특한 책이기도 하다. ‘사전’이라고 했지만 사전처럼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굳이 사전이라고 해야 한다면 ‘청소년 마음 존중 사전’이라고 여기는 편이 좋겠다. 소통이란 말을 나누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을 바로 그 용도로 써보시길 바란다. 아, 참! ‘ㅂㅂㅂㄱ’의 답이 궁금들 하시겠다. ‘반박불가’라는 뜻이다. 나는 『급식체 사전』을 ‘ㅂㅂㅂㄱ’의 교육서로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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