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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학교도서관의 서로 다른 주체로서 8년, 각각의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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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11-06 23:22 조회 6,94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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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서울성심여고 사서교사
 
학교도서관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8년이 되어 간다. 그 긴 시간 동안 한때 회계직 사서였고, 1년 단기사서였으며, 기간제 사서교사였다. 그리고 올해, 꿈에도 그릴 만큼 간절했던 사립학교 정교사가 되었다. 대학교 졸업 직후 곧바로 회계직 사서로 근무했기 때문에 서른세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젊고 능력 있는 많은 지원자들 가운데 최종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뭉클하곤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했을 당시,학교도서관을 염두에 두고 진학한 것은 아니었으나 우연한 계기로 교직을 이수하였고, 학교도서관으로 교생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그 교생실습을 통해 학교도서관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면서 동시에 이용하는 사람의 다양한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묘한 매력을 풍겼다. 특히 학교도서관은 그 매력이 짙게 배어 있는 공간이었고, 나는 내가 아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이것은 학교도서관이 아니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나의 모습이었다.
 
사서로서의 한계, 그래서 더욱 간절했던 사서교사
2006년, 졸업을 한 달 앞두고 경기도의 한 공립 고등학교의 회계직 사서로 취업하게 되면서 학교도서관과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되었다.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실컷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집까지 왕복 4시간이 넘는 고등학교에 겁 없이 지원서를 냈고 용하게도 합격했다. 나는 뛸 듯이 기뻤고 한껏 부풀어 있었다. 아직 졸업도 못한 사회 초년생에게 ‘계약직’이라는 신분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합격 연락을 받은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하여 업무에 투입되었다. 그 당시 신설학교였기에 도서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도서관 가구 선정, 장서구축, 인테리어, 비품 구입을 모두 진행해야 했다. 도서관 개관까지 꼬박 3개월 동안 저녁시간도 반납해야 했지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의외에 부분에서 뜻하지 않게 충돌하기도했다. ‘학교도서관 담당교사와 사서와의 관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고 크고 작은 의견 충돌로 근무 한 달 만에 나름의 위기를 겪었다. 학교도서관 내에서 사서의 권한은 어디까지이고 도서관 담당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그제야 처음으로 ‘회계직’이라는 신분이 주는 한계를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분명히 도서관 안에서 선생님이었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최선을 다해 제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도서부 아이들의 지도교사는커녕 생활기록부에 도서부 아이들에 대한 칭찬의 글 한 줄도 기록할 수 없는 신분적 한계를 경험하면서 ‘사서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슬럼프의 시기, 학교로 돌아오게 만든 아이들
사서교사가 되기 위해 하던 일도 접고 임용시험 공부에 매진하였으나 사서교사 임용 TO는 몇 년째 한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임용도 쉽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학교를 떠나 있으니 아이들과 학교도서관이 그리웠다. 다시 학교도서관으로 돌아왔을 때는 회계직이 아닌 ‘기간제 사서교사’로서 였다. 하지만 2년간 기간제 사서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사서교사로서의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기간제교사로서의 존재감과 한계, 학교 현장에서 사서교사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고 그로인해 내 자신이 더 위축되고 오히려 내 능력이 점점 퇴화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그 학교와 나는 서로 인연이 아니었으리라.
사실, 그 후 나는 학교도서관을 완전히 떠나려고 했었다. 공공도서관에 지원서를 수도 없이 넣고 실제로 6개월간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나긴 슬럼프를 극복하고, 사서교사로서의 내 역할을 찾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것은 아이들이었다. 작년한 해 기간제교사로 근무했던 서울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잊고 있던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그 아이들에겐 내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아이들은 수시로 날 찾아와 이것저것 도움을 요청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한 일인 줄 새삼 알게 되었다. 
 
사서교사,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학교도서관의 정교사 TO가 몇 년째 없다시피 하면서 30대 중반에 들어서는 나는 ‘언제까지 불안한 신분으로 사서교사라는 꿈을 쫓아야하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과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2013년 한 해를 고민 속에 보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2014년에 사립학교 사서교사 지원을 준비하면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내가 가진 강점을 어떻게 학교 현장에 접목 시킬 것인가’였다. 특히 학교도서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젊고 유능한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최대의 강점은 다양한 학교도서관의 경력이었고, 이 점을 최대한 살려야 했다. 그래서 내가 집중한 것은 학교의 ‘예산’과 ‘평가’와 ‘인력’의 조화였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유능한 ‘인력’을 배치한다면 학교 ‘평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내세운 핵심이었다. 이 점을 학교도서관 현장에 적절히 반영하여 작성한 ‘도서관 운영계획서’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학교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독서교육으로 ‘독서토론’ 수업을 제안하였다. 창의적 재량활동 시간을 활용한다면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사실 ‘독서토론’은 처음 학교도서관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 오는 활동이기 때문에 자신 있는 분야이기도 했다.
이에 더해 ‘치유의 책 읽기’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학교도서관에서 아이들을 수시로 만나면서 크고 작은 상담을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상담을 해 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비록 1년 과정이지만 학위도 취득하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학교 내 ‘Wee클래스’와 연계한 치유의 책 읽기 프로그램을 계획, 사서교사와 전문상담교사의 협력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연찮게도 내가 지원한 학교는 ‘2014년 인성중점학교’로 선정되어 있었으니 ‘치유의 책읽기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인정받게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 긴 시간 동안 많은 시련과 갈등이 있었다. 많은 예비 사서교사들도 나와 같은 고민들로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줄로 안다. 현실에 지치고 힘겹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라는 말은 감히 못하겠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거라고 전달하고 싶다. 지금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할 것을 굳게 믿는다면, 순간 순간 닥쳐오는 위기와 갈등을 지혜롭게 대처하며 기꺼이 자신의 능력을 가꿀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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