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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메뚝샘의 교사들을 위한 인문에세이]이행(利行)을 위한 동행(同行), 사제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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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9-18 21:48 조회 7,32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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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산 홍천 매산초 교사, 『교사, 가르고 치다』 저자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우치다 타츠루 지음┃이수정 옮김┃갈라파고스
원제 レヴィナスと愛の現象學(2001년)

1.민주주의적 수학여행
슬픔이 이토록 버거웠던 적은 드뭅니다. 고통의 주제는 아이들이고, 아픔의 소재는 수학여행입니다. 이 시대의 수학여행은 푸름의 신선함이 아니라 학창을 갈무리하는 눅눅한 갈색입니다. 낙화를 지르밟는 스산함으로 학창 시절을 정리하는 여행이고, 역동보다 회환을 학습하는 여행입니다. 어느 멋진 날의 추억이라기보다 여느 초라한 날들의 정리입니다.
팽목항 심연에서 차갑게 삶을 정리해야 했던 그 아이들의 수학여행도 같은 색깔이었겠지요. 제주의 맛깔로 밋밋했던 고교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던 애절함도 깊었을 텁니다. 자연사가 아닌 아이들의 죽음은 참 예리하게 아픕니다. 지켜 주지 못한 우리들은, 살아가는 내내 허망한 아이들의 죽음을 깊숙한 심장에 할퀴고 불편해 하며, 아주 미안하게 남은 생을 살아야 합니다. 아니 그리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말의 도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슬픔에 대한 망각 속도는 당대의 인간성과 반비례합니다.
10여 년 전, 조금 독특한 수학여행을 계획했던 적이 있습니다. 일방적인 전체주의적 여행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민주주의적 여행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지요. 머물 장소와 탐방할 곳들을 아이들과 토론해서 걸러 내고 가렸습니다. 2개월쯤 기획하고 나니 여행할 곳을 이미 여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어서 가고 싶어 조바심 냈지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를 꼼꼼히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지정해 준 친절한 장소는 우리들의 토론을 무력하게 했습니다.
낡고 구태한 곳. 서라벌, 경주. 30년 전부터 내내 수학여행이란 개념을 독식한 곳이었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태연했습니다. 오히려 경주라서 좋다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 교과서에서 배운 신라에 대한 호기심이 깊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고구려의 개척 정신과 신라의 통일 정신을 국익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학여행 장소는 경주 이외에 다른 가짓수가 별로 없습니다. 수학여행을 공부의 연장이라 믿고 있는 착한(?) 아이들에 한에서 말이지요.
기실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은 학교가 심어 주고 어른들이 종용하는 곳이거나 미디어가 연신 포장하는 스펙터클한 대도시의 장소들이 대부분입니다. 전자는 모범생들이 좋아하는 곳이고, 후자는 일찍 어른의 정서를 닮아 버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아이들은 모조리 전자였습니다. 화려한 대도시에 대한 환상보다 그 공기의 쾌쾌함이 주는 비릿한 냄새가 싫었다는 전언입니다. 중첩된 우연으로, 한 녀석이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3』(경주 지역)을 빌려 읽고 있었습니다. 강력한 녀석의 감동에 속아 너도 나도 같이 읽었습니다. 밍밍하고 낡은 경주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신비했습니다. 신비가 날이 서니 가야겠다는 욕구도 조금씩 익어 갔습니다.
같은 해 여름 방학, 답사를 갔습니다. 대부분 수학여행은 버스회사나 여행사에서 미리 정해준 대로 계획합니다만, 아이들과 준비한 시간이 아까운 터라 일반적 방식보다 우리만의 수학여행 코스를 잡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중 제가 권한 코스는 경주 남산이었지요. 역사의 두께를 발가벗겨 느낄 수 있는 곳.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불상이 불쌍하게 버려지는 산입니다. 풍경 자체가 상처고, 상처의 풍경이 인위를 견뎌 냈던 산입니다. 김훈은 이곳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가을의 경주 남산에서는 산의 살과 피가 증발해 버린 골산의 능선을 따라서 부처의 뼈가 드러난다. 경주 남산에서는 주봉을 중심으로 산세를 가늠하기가 불가능하다.권역이 그다지 넓지도 않은 그 산은 모든 계곡들이 그 골짜기가 다하는 곳에 저마다의 봉우리 하나씩을 이고 있고, 골짜기를 옆으로 질러 넘어가면 별도의 봉우리를 섬기는 또 다른 계곡이 흘러내린다.–『풍경과 상처』, 문학동네, 2009, 25~26쪽
 
사전 답사 첫 날, 남산에 올랐습니다. 사람이 드문 곳이라 관리인 한 분과 알 수 없는 이유로 양복을 차려 입고 허덕허덕 능선을 타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목례와 함께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선 묻지않고, 경주의 찬란한 역사가 산업화 시대에 후미로 미끄러지는 한탄을 잠시 공유했습니다. 산에 오르며, 김훈이 묘사한 “살과 피가 증발해 버린 부처의 뼈”들을 몇몇 만져 보았습니다. 망치와 정만으로 차 안의 세속을 벗어나고픈 그 고통이 살포시 내렸습니다. 극락을 바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현실에 대한 극한의 고통. 불상을 파는 순간만이 희망을 상상할 수 있었을 극도의 아픔. 그런 것들이 밀려오면서 걷는 길 내내 육신의 고통보다 두꺼운 피로가 쌓였습니다. 정상이랄 것도 없는 봉우리에 올라 경주 시가지에 시선을 박아 두고, 붓 그림을 한 점과 아이들에게 소개할 제 느낌을 기록했습니다.
석굴암, 감은사, 문무대왕릉, 안압지, 경주 박물관 등을 거쳐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의 얼굴을 상상했습니다. 우려가 몰려옵니다. 이렇게 징그러울 만큼 평범한 수학여행을 아이들이 추억의 저장고에 보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경주 말고 조금 더 자극적인 장소로 바꿔 볼까 생각도 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수학여행 당일입니다. 가랑잎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갈색 물감이 산 속에 내내 내리고 있었고 아이들의 기대는 하늘과 닿아서 고성이 귀를 찌르며 버스는 달렸습니다. 경주 초입, 그 뿌리를 알 수 없는 싸구려 콘크리트 기둥과 국회의원 양복처럼 표정 없는 검정 기와를 덧댄 톨게이트를 지납니다. 독재시절, 전통을 졸속으로 복원하겠다는 그들의 독단이 아직 치워지지 않고 뻣뻣하게 남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신명은 그 남루한 건축 양식조차도 환호로 승화합니다. 떠났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장황하게 경주의 얼이나 화랑의 정신 같은 교과서적 이야기들은 잠시 접고 고래고래 함성을 공유했습니다. 경주 박물관과 안압지를 들르고 첫째 날을 마무리합니다. 숙소에서 베개 싸움과 전기 게임 같은 고전적 놀이를 함께한 후 잠이 들었습니다. 이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제 얼굴에 베개를 강타한 한 녀석은 민주주의의 자유를 만끽하는 듯 알싸한 미소를 쏩니다. 선생님을 때릴 수 있는 권리. 강자 앞에 주눅 들지 않고 자기 욕구를 일방적으로 가격할 수 있는 자유. 이런 것들이 허락되는 민주주의적 여행을 맛본 것이지요.
다음 날, 드디어 남산에 올랐습니다. 거산은 아니지만 쉽지 않는 코스였기에, 중간에 지친 아이들이 보입니다. 광활한 풍광이나 극진한 자극이 없는 산은 여행의 신명을 앗아가는 분위기였습니다. 볼멘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맨 끝에서 아이들의 발걸음을 종용하는 저는 아이들의 반응만큼 다리가 무겁습니다. 예상했던 반응입니다. 그러나 반응에 대한 대책이 묘연한지라 수습이 걱정입니다.
아이들이 남산 속 천년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 깊은 시간의 밀도로 꺼이꺼이 버텨 온 불상들도 무심히 지나칩니다. 산행의 피로가 풍경의 상처를 외면하게 합니다. 안쓰러움이 밀려들었지만, 그대로 오릅니다. 오르는 게 목적이 아닌 산을 그저 오르는 것은, 죽음이 목적이 아닌 삶을 그냥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베낀 듯해 더 비통해집니다. 필경 제 고민이 아이들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실패한 여행처럼 기록될 듯했습니다. 아이들 탓을 하고 싶어집니다.
‘고개를 돌려 산의 역사를 보며, 내 통증만이 아니라 신라인들의 통증을 상상해 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눈은 이미 버려진 불상들처럼 늦가을의 피로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경주 시가지가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게 내려 보입니다. 환호를 지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만, 대부분 실망한 표정입니다.
민주적 여행을 실험해 보고자 했던 기대도 무너졌습니다. 살랑 바람이 불고, 볼과 목덜미의 땀이 사늘하게 식어 갈 때쯤, 몇몇 아이들이 솔솔 기운을 차립니다. 조심스럽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냅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화려한 볼거리에 환호를 지르는 것도, 환상적인 풍경에 놀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들의 목적은 자그마치 천 년 동안 이 산을 오르내렸던 사람들의 혼과 얼을 잠시나마 담금질해 보는 것이다. 너희들에게 내가 바라는 바는 시시콜콜 던져 주는 지식을 날름날름 받아먹는 모범적 모습이 아니다. 가르쳐 준 바 없는 것 또한 스스로 배워버릴 수 있는 열린 사고다. 배움을 소개하는 것은 내 몫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순전히 너희들의 책임이다. 남산을 오르며, 너희들이 배워야 했던 것은 가르쳐 준 지식이 아니다. 신라인들의 숨소리, 천년을 견뎌 낸 산의 정신, 아무도 스스로 배우려고 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아주 예민한 상상 같은 것이다. 이해될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너희들이 내가 가르친 바 이상을 배워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2.가르친 바 없는 것을 배워버리는 관계, 사제동행
 
제 이야기가 너무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억지로 견뎌 주는 아이들의 표정도 읽힙니다. ‘가르친 바 없는 것을 배워버리는 것’의 의미를 아이들이 쉬이 이해할 도리는 없습니다. 다만, 민주주의적 여행의 기본을 어떤 방식으로든 나누고 싶었습니다. 물론 너무 성급했다는 데도 동의합니다.
민주주의적 여행은 모두가 주인인 여행이며 선장이 없는 여행입니다. 선장이 없기 때문에, 각자의 몫은 각자가 배워야 하지요. 배운 바 없는 것을 스스로 배우는 것이 민주주의의 내적 논리입니다. 민주주의적 여행은 자기가 자기 몫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여행입니다. 가르친 것들만 타박타박 수용하는 교육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적 교육이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지요. 배우면서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우는 방식입니다. 전통적인 사제동행의 개념입니다. 이를 위 해 스승뿐 아니라 제자 또한 주인이 돼야 합니다. 배움의 두 주체가 서로를 타자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 레비나스는 이것을 ‘타자의 환대’라고 했습니다. 그의 제자를 천명한 일본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사제관계를 다음과 같이 비유합니다.
 
스승이 타자라는 것은 단지 스승이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스승은 제자인 나의 이해가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지적 차원에 있지만, 그 ‘이해가 미치지 못함’은 제자인 나에게 고유한 것이어서, 나 이외의 누구도(스승의 지우도, 다른 제자들도) ‘대체할 수 없는, 이해가 미치지 못함’이라는 것이다.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33쪽
 
스승은 타인이며, 타자입니다. 그것도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지적 차원”에 이른 타자입니다. 도달할 수 없는 경지는 스승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이 경지는 스승이 만들어 내는 경지가 아니라 제자가 재창조해야 하는 경지입니다. 제자가 구성하고 발굴해 내는 완벽함이지요. 신적 완벽함이 아니라, 제자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의 스승을 발견하는 과정 안에서의 완벽함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사제지간이란 대체 불가능한 나와 스승만의 은밀한 관계를 창조하는 과정입니다. 그 책임은 스승과 제자 모두에게 있습니다.
사제란, “저쪽이 ‘가르친’ 바가 없는 것을 이쪽이 ‘배워버리는’”(같은 책, 6쪽) 그런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쌍방이 같은 지향점을 바라보되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만의 환대로는 관계의 층위가 농축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스승이라 해도 그 스승의 의미를 단독적으로 받아들이는 제자가 없다면, 그는 죽은 스승입니다. 쌍방의 지향점이 해방되어 있는 관계, 동행하지만 이질적인 관계. 이것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선생을 위한 이행(利行)의 관계입니다.
레비나스의 ‘타자의 환대’라는 개념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기 위하여 둘만의 독특한 동행을 환영하는 양식입니다. 남이 준 것 없는 것을 받아 버리는 결단이지요. 이 결단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모두 각자의 자기를 견고하게 다져야 가능합니다. 무조건 준다고 좋은 것도 아니며, 조건 없이 받는다고 완성되는 것도 아니지요. 주고받음이 양방 통행하며 유연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적 여행이란 한 사람만의 힘을 믿지 않는 여행입니다. 선장 없는 아나키스트들처럼 각자 선장이 되고, 각자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는 방식이지요. 때문에 이 방식은 비효율적입니다. 중심이 없기 때문에 혼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이 복잡한 혼종의 방식을 용인하는 제도입니다. 이 혼종의 복잡성이 실망의 실마리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새로운 여행의 이정표가 되길 원했던 것이지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에게 여행에 대한 상처를 각인시켰을 수도 있겠지요. 다만, 사제관계의 의미만은 꼭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동행이란 이행을 위한 준비입니다. 따로 가기 위해 잠시 같이 가는 임시적 경험이지요.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그들이 각자의 길로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따로 또 같이’를 위한 준비 운동이지요. 그러나 이 어깨동무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치다 타츠루는 진정한 사제관계를 ‘나의 이해도공감도 초월한 지적 차원이 있다’는 ‘신화’를 받아들이는 결단"(같은 책, 28쪽)이라 했습니다. 참된 사랑이 사랑의 대상을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사랑이듯, 참된 사제동행은 위대한스승과 잠시 머무는 것뿐만 아니라, 위대한 스승을 스스로 창조하려는 결단까지 포함합니다. 참된 사제관계는 스승의 탁월함을 넘어, 제자의 용기까지 필요한 것이지요. 요컨대 위대한 스승은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에 의해 창조됩니다. 따라서 사제동행은 눈높이를 맞추는 단순한 평등의 개념이 아니며, 평등의 실현이 사제관계를 온당히 지키는 중심도 아닙니다. 진정한 사제관계는 평등을 넘어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로까지 확장됩니다.
 
평등에 기초해서 평등을 실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법리적 공정’에 기초해서 ‘인간적 공정’을 실현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평등한 것들’ 사이에서는 타인에 앞서 유책성을 인수하는 일이 애당초 원리적으로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리적 공정’은 권익이나 이득의 분배에서 불평등을 바로잡고, 평등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같은 책, 258쪽)
 
고대에는 스승을 모실 때 폐백을 올렸다고 합니다. 사제동행의 조건을 예단하는 단계를 거친 것이지요. 폐백을 통해 스승은 제자의 면면을 살피고, 제자는 스승의 귀함을 살핍니다. 쌍방이 존재의 깊이를 허락했을 때 사제는 동행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반면 현대 사제 관계에서는 선택의 과정이 없습니다. 존재의 무게를 가늠해 볼 수 없이 시작되는 관계이지요. 때문에 우리의 관계는 말랑하고 가볍습니다. 이 시대에 스승이 사라진 이유는 가르치는 자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예찬이 조금씩 천박해지는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스승은 그 자체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제자와의 관계 속에서 위대해지기 때문이지요. 위대한 사회만이 위대한 스승을 발굴하고 위대한 제자가 그 스승과 함께 커 갈 수 있습니다.
세월호의 생존자가 없습니다. 모두가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죽음을 나누지 못한 교감선생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제동행의 마지막 자존심을 죽음으로 지키셨습니다. 그의 결연한 죽음을 보며 깨닫습니다. 아직 이 사회에 사제동행의 그 뿌리가 다 삭진 않았다는 희망을 말이지요. 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와야만 하는 세상이 그립습니다.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의 역자의 머리말을 믿어 보렵니다.
 
“언젠가는 조금 더 ‘윤리적인’, 조금 더 ‘성숙된’ 인간들이 이 거친 세상에서 조금 더 많은 ‘지분’을, 혹은 조금 더 넓은 ‘영토’를 갖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를 테니까…….”(같은책.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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