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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새책 난 네가 그리핀 선생님에게 한 일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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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1 12:25 조회 7,09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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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에 자신이 없어진다. 부쩍 아이들의 눈빛이 무섭게 느껴진다. 나의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을 위해서 한 말인데, 원칙을 지키자는 건데, 말하고 나서 나 혼자 외로운 섬이 되는 느낌. 그렇게 한 번 어긋나면 아이들은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것 같다.

작년부터 교원평가를 받았다. 전교생을 상대하는 도서관 사서교사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학생 개개인의 사연들이 모여 전달되는 결과는 ‘난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건 그런 뜻이 아니었어.’라고 일일이 해명하고 싶게 만들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비춰진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인터넷 댓글 달듯이 선생님에 대한 비난을 함부로 쓴 학생들을 마주하기 점점 쉽지 않다. 나보다 훨씬 더 억울한 선생님이 있다. 소설이지만 너무 처참하다.

그 아이들에게 그리핀 선생님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때는 봄, 미국 남서부 지방 특유의 거센 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던 어느 봄날이었다. (5쪽)

델 노르테 고등학교에서 영미 문학과 작문을 담당하는 그리핀은 원리원칙만 앞세우고 융통성 없이 엄격한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학생이 고등학교 졸업을 못하더라도 낙제 점수를 준다. 어느 봄날 그리핀은 자신이 내준 숙제를 걷는데…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 된다.

전날 농구시합 때문에 과제를 내지 못한 제프, 과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벳시, 과제가 바람에 날아가 그날제출할 수 없는 데이비드는 불만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는 이가 있다. 바로 작년 그리핀 선생이 준 낙제 점수로 한 학년을 다시 다니고 있는 마크. 마크는 수잔도 눈여겨본다. 수잔은 우등생이지만 그리핀 선생님 수업에선 B학점밖에 받지 못했고, 외모 콤플렉스로 친구 하나 없다. 말을 잘하고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눈빛을 가진 마크는 이들에게 접근해 선생님을 납치해서 잘못했다는 사과를 받아 내겠다는 계획을 치밀하게 실행에 옮긴다.

아직 이것으로는 선생님을 납치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 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원작자이자 미국 청소년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 로이스 던칸은 추리소설의 대가답게 사건과 긴밀하게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가족과 주변 이야기를 잘 구성하여 놓았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마크이다. 마크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인 ‘사이코패스’를 앓고 있다. 점점 드러나는 마크의 진실에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불후한 어린 시절과 부모에 대한 증오가 가득하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숨긴 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아버지와 동일시하며 내면의 분노를 표출한다. 자신의 계획에 협조하지 않자 수잔을 죽이려는 장면에서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이 개인이 가진 행동 양식은 반복적으로 사회와 갈등을 일으키는 특성이 있다. 또한 다른 개인이나 그룹, 사회적인 가치 체계에 충실하지 못하며, 이기적이고 냉담하며 무책임하고 충동적이며 나아가 어떤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 (333쪽)

학생들에게 더 많은 지식을 가르치고자 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고등학교 교사를 선택한 그리핀 선생님은 사랑하는 아내와 태어날 아이를 두고 깊은 산속에서 팔다리가 꽁꽁 묶인 채 죽고 만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햄릿』의 오필리아가 죽음에 이르는 심정을 노래한 수잔의 시가 소설 전반과 후반에 복선으로 깔린다. 이것은 그리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였으니 그의 비극을 예견이라도 했듯이 몹시 애처롭고 슬프다.

… 비록 님은 나를 외면해도 / 오호라, 오호라, 나는 계속 노래하리. / 마음속 찬가는 빛이 나래고 / 손가락의 반지는 사라졌다 해도. / 물아, 깊디깊은 차가운 물아, / 내가 잠들 수 있도록 빠르게 흘러가 주렴. / 작은 죽음을 이미 겪은 나에게 / 너와 함께 하는 죽음이야 힘들지 않으리. (「오필리아를 위한 마지막 노래」) (18~19쪽, 337쪽)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뉘우친 수잔은 그리핀 선생님이 자신의 시를 극찬한 메모를 읽게 된다. 너무 늦게 선생님의 진심을 알게 된 수잔. 햄릿이 오필리아의 죽음에 대해 느꼈을 죄책감과 비슷하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자신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았던 그리핀 선생님은 오필리아처럼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하는 ‘작은 죽음을 이미 겪고’ 실제로 두 번째 죽임을 당한 것이다.

소설은 마크 일당이 사건을 은폐하는 과정을 쫓아간다. 제프, 벳시, 수잔, 데이비드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은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가 되어 극적 긴장감을 높여준다. 청소년을 위한 성장소설의 내용으로는 너무 끔찍한 내용이라서 추천하는 것을 조금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감성이 메마른 이 시대의 교육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마크와 같은 사이코패스의 성장을 간과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학부모님께 적극 권한다.

우리 아이는 아닐 거라는 단순한 생각은 안 된다. 지식만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어서는 사람다운 사람이 안 될 것이다. 따뜻한 감성의 사람으로 키우는 게 교육의 목표이지 않은가. 진심이 통해야 하는 교사와 학생 사이를 평가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는 지금의 교육현실이 안타깝지만 우선 나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으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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