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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짝퉁 인디언 소년의 생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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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4-21 22:07 조회 11,01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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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 후라이드 껍데기』
셔먼 알렉시 지음|엘런 포니 그림
김선희 옮김|다른|2012

01
파트타임 인디언
한 권의 소설책 읽는 재미가 방과 후 통학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똘똘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절친이 들려주는 그날그날의 경험담처럼 유쾌, 통쾌, 상쾌하다면? 누구든 그 책 제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1년 안에 모든 상을 휩쓰는 동시에 금서로 지정될 것임을 확신한다.”라는 세계적인 작가 닐 게이먼의 추천사가 책날개에 실려 있고, 실제로도 2007년 전미 청소년 문학상과 2008년 보스톤 글로브 아동문학상 수상을 비롯하여 뉴욕타임스, LA 타임스, 미국도서관협회 등이 선정한 ‘최고의 책’으로 꼽힌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면? 금서로 지정될 뻔했던 그 책의 내용이 몹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좋다. 그만 뜸들이고, 책의 제목부터 알려드리겠다. 영문판은 『The Absolutely True Diary of a Part-Time Indian』이고, 우리말 번역본은 『켄터키 후라이드 껍데기』이다. 생뚱맞다고? 그렇다. 가슴이 저미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떠벌리는 주인공만큼이나 딴청부린 제목이다. 하지만 주인공 아놀드 스피리트 주니어처럼 18시간 30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닭다리 껍데기도 천국의 맛인 법이다. 주니어는 작가 셔먼 알렉시의 분신이다. 작가도 생후 6개월 만에 뇌수종 수술을 받았고, 왕따였고, 인디언 보호구역 바깥의 고등학교를 다녔다. 작가가 아무리 ‘절대적으로 사실인(absolutely true)’ 양 능청을 부린다 해도, 이야기는 소설다운 허구가 덧씌워진 반(半)자서전인 셈이다. 아무튼 보호구역에서 “인디언으로 사는 게 내겐 하나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파트타임(part-time) 일이었다. 게다가 돈 한 푼 받지 못했다.”는 주니어의 고백으로부터 이야기는 보호구역을 넘나든다.

02
인디언 보호구역
열네 살이 되도록 여전히 말을 더듬고 혀 짧은 소리를 내는 세계 최고의 지진아로 불리는 왕따 주니어는 세상에 말을 걸고 싶어서, 세상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기에 그림을 그린다. 펜을 손에 쥐고 있는 한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자신만의 꿈 꿀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주니어는 1992년 11월, 워싱턴 주에 있는 스포케인 부족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고작 두 시간 늦게 태어난 터프 가이 로디가 그의 유일한 친구이다. 로디는 술고래에다가 시도 때도 없이 주먹질을 해대는 아버지를 피해 주니어의 집을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거린다. 여느 인디언들처럼 그 역시 가진 것이라고는 폭력을 휘둘러 알량한 자존심을 지켜내는 힘뿐이다.

1881년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로 스포캔(Spoken)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대다수의 인디언들 중에는 주니어의 가족과 로디의 가족도 있다. 주니어의 표현에 의하면, “보호구역은 중요한 곳에서 북쪽으로 약 백만 마일, 행복한 곳에서 서쪽으로 20억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땅한 일거리도 없이 가난과 술주정과 폭력 등이 창궐하는 곳이다. 잔디가 있는 집도 열다섯 곳밖에 없고, 그 집주인 중 누구도 잔디 깎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기에 허드렛일로 용돈을 버는 것조차 녹록잖다. 이 동네에서 철자법이나 제대로 알고 기술이나 그럴듯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주니어의 엄마와 학교 선생님들 정도이다.
 
사실 백인들이 정한 보호구역은 사실상의 거주자인 인디언들에겐 감옥을 의미한다. 프란츠 파농의 표현을 빌리면, 본래의 ‘자기 땅에서 유배된 자들’인 인디언들에게 보호구역 내에서의 희망 없는 삶이란 무기수나 사형수들의 무료하고 배고프고 두려운 일상의 반복과 닮았다. 여전히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이 신비주의로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인디언들은 보호구역 내에 만연한 실업, 폭력, 알코올중독 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어쩌다 주어진 기회마저 고민조차 없이 탕진해 버린다. 주니어를 둘러싼 인물들은 어른이거나 노인이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술에 취해 있고, 슬프고, 무능력하고, 희한하고, 천박하다.” 주니어의 아버지도 걸핏하면 술을 마신다. 다행히 로디의 아버지처럼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고 맞이한 첫 수학 시간, 나눠준 수학책을 펼쳐본 순간, 주니어는 엄마의 처녀 시절 이름이 한 귀퉁이에 적혀 있는 걸 발견한다. 30년 넘은 책을 물려받아야 하는 악무한의 태만과 가난에 주니어는 결국 분노하고 만다. “그럴 만하니까 가난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못났으니까 가난하다고 받아들이는” 인디언들의 무력감에 환멸을 느낀 주니어는 홧김에 백인인 P 선생의 얼굴을 향해 책을 내던진다. 그리고 그 죗값으로 정학을 당한다.

03
희망의 일방통행로
셔먼 알렉시는 1993년 출간한 첫 단편소설 모음집 『고독한 보안관과 톤토가 천국에서 싸우다』(The Lone Ranger and Tonto Fistfight in Heaven) 이래로 꾸준히 학살과 강제적인 동화정책의 피해자인 인디언들의 정체성, 다시 말해 ‘인디언이라는 것(Indian–ness)’을 소설의 주제로 다뤄왔다. 알렉시 이전의 인디언 작가들, 이를테면 실코(Leslie Marmon Silko), 얼드릭(Louise Erdrich), 모마데이(N. Scott Momaday) 등이 작품을 통해 인디언과 백인간의 다름을 강조하고 보호구역 내에서 인디언들의 정체성 유지를 지향했다면, 알렉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디언들의 삶의 지평을 보호구역 밖으로 확대하기를 주장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주니어에게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7년 동안이나 지하실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며, 진짜 아무 것도 안 하고 지내는 누나가 있다. 자신의 미래를 지하에 묻어버린 루저로 낙인찍힌 누나의 숨겨진 재능과 꿈을 알려준 이는 뜻밖에도 주니어로부터 수학책으로 얻어맞은 P선생이다. 어느 날 P선생은 주니어를 찾아와 말한다. “난 정말 네 누나가 작가가 될 거라 생각했어. 자기 책에 계속 글을 썼으니까. 누군가에게 보여 줄 용기를 키우고 있었지. 그러다 그만뒀어.” 이제 P선생의 비밀 아닌 비밀 누설에 주니어는 누나에 대한 오해를 푼다. “나는 우리 누나의 의지, 스피리트가 죽었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누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 보호구역은 누나를 숨 막히게 했고, 누나를 지하실에 가두어 두었다.”라고 되뇌며, 주니어는 할아버지에서 아버지에게로,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대물려지는 폭력과 알코올 중독이 만연한 주위를 둘러본다. 이어 P선생은 “이 슬프고 처절하고 비참한 보호구역으로부터 멀리 더 멀리 떠나갈수록 희망을 더 가깝게 찾을 수 있다”며 탈주를 부추기고 주니어는 떠날 결심을 한다.

보호구역으로부터 35 킬로미터 떨어진 리어단 고등학교까지 가는 길은 절친 로디를 배반한 대가와 인디언 동료들로부터의 미움을 각오해야 하는 가시밭길이다. 게다가 부자 백인 농장 마을에 위치한 새 학교에서 어떤 피눈물 나는 학대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나마 아버지가 술에 취했거나 자동차 휘발유 값이 없어 데리러 오지 못할 때에는, 그 먼 길을 홀로 걸어오거나 자동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공동체의 구속력이 그 어느 집단보다 강한 인디언 사회에서 개인적 성취를 위해 백인 학교로 전학한 주니어는 결국 불알친구 로디와도 원수지간이 된다.

04
농구코트의 인디언 영웅
리어단 고등학교에서 주니어는 아놀드로 불린다. 처음에는 붉은 피부색 때문에, 엄청난 머리통 사이즈 때문에, 외계인 취급을 당한다. 또한 보호구역 내에 있는 옛 학교인 웰피니트 아이들은 자신들을 배신한 놈이라며, 돌팔매질이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든, “다른 사람을 내 삶에 조금 들어오게 해 주면, 그 사람은 실로 놀라워질 수 있다.” 새 학교에서 농구팀에 합류하게 된 주니어는 당돌한 백인 소녀 페넬로페와 사귀게 되고, 책벌레 백인 소년 고디로부터 제대로 된 독서의 방법을 배우게 된다. 주니어는 인디언의 장점을 기꺼이 인정하는 이들 백인 친구들과 가까워지면 질수록, 정작 자기 부족의 오랜 품성인 관대함을 잃어버리고 타자에 대한 선입견과 증오심에 사로잡혀버린 인디언들의 슬픈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주니어는 백인 농구 코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학교 농구팀의 주전 멤버로 활약하게 된다. 사실 농구는 인디언 전통 스포츠 후프 앤드 폴(hoop and pole)과 유사하고, 공이 바닥을 튕길 때 나는 리드미컬한 리듬은 인디언 전통의식에서의 춤의 리듬과 닮았다는 이유로 보호구역 내에서 인기 스포츠이다. 리틀 빅혼 전투의 영웅 크레이지 호스의 뒤를 이을 새로운 영웅의 이미지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다름 아닌 남자농구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니어는 불행하게도, 첫 시합으로 보호구역 내 옛 학교 체육관에서 옛 동료인 인디인 선수들을 맞상대해야만 했다. “아놀드, 엿 먹어!”라며 백인 학교에서의 이름으로 비아냥거리는 인디언 농구팬들의 함성 소리에 기가 죽은 주니어는 로디와의 몸싸움에서 쓰러져 이마를 세 바늘 꿰매게 된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주니어는 다시 뛴다. “무엇을 하든, 인간의 삶은 자신의 장점에 얼마나 전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는 코치의 조언이 주니어를 펄펄 날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편 선수 로디의 맹활약으로 주니어가 속한 원정팀의 패배로 끝난다.

이렇게 되자, 주니어는 보호구역 내의 인디언들과 로디에 대한 양가감정으로 혼란스러워진다. 주니어를 진짜 화나게 하는 건 관중들 앞에서 자신을 쓰러트린 로디가 아니라, 타고난 재능을 썩히며 거리에서 빈둥거릴 뿐, 절대로,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구역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내밀려 하지 않는 로디가 자신을 대하는 빈정거림이다. 물론 농구장 밖의 로디는 스스로 탈주를 시도할 만큼 야무지지도, 추방을 당할 만큼 특이하지도 않은 그저 ‘배운 거라곤 포기하는 것’밖에 없는 인디언 소년이다. 슬럼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진학해 대성한 흑인 농구 선수는 많아도, 프로 농구 코트에서 활약하는 인디언 스타 농구 선수는 정작 드물지 않던가!

05
꿈을 찾아다니는 유목민
얼마 뒤 주니어는 로디와 다시 한 번 맞붙는다. 이번에는 철벽 수비로 덩크 슛을 날리려는 로디를 막아내고 팀을 승리로 이끈다. 하지만 주니어는 금세 공허해진다. 보호구역 인디언의 유일한 자부심인 웰피니트 레드스킨스 팀 선수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게 된다. “저들 중 두세 명은 아침을 걸렀을지도 모른다는 걸 난 알았다. 집에 음식이 없으니까. 저들 중 일고여덟 명은 마약을 하는 아빠가 있다는 걸 난 알았다. 저들 중 둘은 아버지가 감옥에 있다는 걸 난 알았다. 저들 중 누구도 대학에 가지 못할 거라는 걸 난 알았다. 어쩌면 로디는 아버지한테 흠씬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며, 복수를 하려 했던 어리석음을 뒤늦게 후회한다.

불현듯 주니어는 로디에게, 다른 스포캔 사람들 모두에게 사과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그 순간, 주니어는 자신이 스포캔 인디언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로디가 책을 읽고 있다. 고대 인디언에 관한 책이란다. 인디언들이 유목민들로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란다. 로디가 주니어에게 말한다. “넌 옛날의 유목민이야. 넌 세상을 계속 돌아다닐 거야. 정말 멋져.” 덕분에 주니어는 자신이 더 이상 외로운 인디언 소년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제 주니어는 자신이 꿈을 찾아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났던 다른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의 부족이자, 농구선수라는 부족이자, 책벌레라는 부족에 속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게다가 만화가 부족, 십대 소년 부족, 가난뱅이 부족, 가장 친한 친구를 그리워하는 소년들 부족의 하나임에 가슴은 먹먹해진다.

이토록 가슴이 저릿저릿한 이야기를 유쾌한 문체로 통쾌하게 독자를 웃게 만드는 셔먼 알렉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디언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기존의 아메리카 인디언 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왔다. 시인, 소설가, 영화대본작가로 문학적 명성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코미디언과 가수로도 맹렬히 활동해 왔다. 그는 결코,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짝퉁 인디언이 아니다. 보호구역 내에서 불행을 답습하는 게으른 인디언이 되기보다는, 보호구역을 벗어나 좌충우돌하더라도 꿈을 찾아 모험하는 유목민이 되기를 기꺼이 선택한 선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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