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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4 20:52 조회 6,59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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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팔자가 상팔자’란 말이 있어. 하루 종일 잠자는 우리 집 진돗개한테 딱 어울리는 말이지. 그 녀석이 내 방에 누워 있을 때면 나도 하던 일 잠시 멈추고 그 옆에 가서 눕기도 해. 그 녀석 눈은 까매가지고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으면 먼저 다가간 건 나인데도 도리어 내가 쑥스러워서 눈길을 피할 때가 있어. 마치 나한테 ‘공부하다 말고 여기 누워서 뭐하냐’라든가 ‘청소 좀 해라. 방 꼴이 이게 뭐냐’라고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하다 말고 뒹굴댄다는 자괴감에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은데 그 녀석의 표정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묘한 부처의 모습이라서 (물론 나 혼자만의 공상이지만) 도무지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속내를 알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어. 그런 나에게 김훈의 『개』라는 책은 개의 마음을 속 시원히 알려준 책이라 할 수 있어. 내가 이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이유는 딱 하나, 면밀하게 살핀개의 행동과 그 속내를 적절하게 간파해 낸 작가의 능력 때문이야.

이 책의 주인공 보리를 소개하자면 보리는 서해안 바닷가에 사는 수컷 진돗개야. 누런색 털을 가지고 있고 다섯 형제 중에 셋째지. 모든 것에 대해 궁금해하고 신바람이 나 있는 보리는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나돌아다니고 뒹굴었어. 개에게 공부는 경험이야. 모든 것을 직접 깨물어 보고 냄새 맡고 발로 차서 알아가는 것이지. 그래서 보리는 열심히 나돌아 다녔고 늠름하게 자라 마을의 든든한 파수꾼이 돼. 동네 아이들과 학교도 가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것도 보면서 보리는 항상 사색에 잠기고 생각하는 것을 즐겼어. 그렇게 쏘쿨한보리에게는 흰순이라는 짝사랑도 있고 악돌이라는 라이벌도 있어.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는 보리를 보면 결국 개에게도 사람과 같은 그런 시련은 있는 거 같아.
 
이번 『개』라는 책에서 작가는 부제로 개의 발바닥 이야기를 써놨더라고. 개를 키우면서 발바닥은 한 번도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한번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개 발바닥은 거칠거칠하지만 푹신푹신한 게 거꾸로 보면 곰돌이 같아서 귀엽게 생겼는데 냄새는 고약하지. 어찌 보면 정말 연약하게 생긴 발로 온 동네 구석구석 뛰어다닌 개한테는 그 굳은살이 인생의 연륜으로 통하는 거 같아. 이 책의 주인공 보리도 발바닥 굳은살을 늘려가며 세상을 배웠어.



물론 처음엔 연약하고 물러터진 발이었지만 흙을 파헤치고 나무 냄새를 맡는 동안 경험과 함께 굳은살은 늘어난 거지. 그렇게 어슬렁거리면서 보리는 사람 옆에서 항상 보호하며 살아야 하는 개의 생을 알게 되고 더불어 사람의 생까지 알게 돼. 보리에게는 사람이 항상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뭔가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골치 아프게 사는 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것을 말해줄 수 없는 것이 개의 고통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지.

나는 『개』라는 책을 읽기 전에는 개의 삶이 참 편하다고 생각했어. 일 년에 네 번 혹은 그 이상씩 봐야 하는 시험도 없고, 가만히 누워 자다가 주인이 밥 주면 밥얻어먹고, 언제나 아무데서나 똥 쌀 수 있고, 일찍 독립해서 혼자 살 수 있으니 정말로 상팔자잖아.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 삶을 살아가는 자세인 것 같더라고. 아무리 내가 개가 되고 싶어 해 봤자 개가 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반대로 보리가 사람이 되고 싶어 해 봤자 사람이 될 수 없는 법이야. 각자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삶만큼 신나고 재밌는 것은 없다는 거지. 보리는 쏘쿨해서 개로 태어난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일찍 받아들였고 우리는 조금 늦었을 뿐이지만 뭐 어때. 정말로 내 삶을 즐기게 된다면 ‘인간 팔자 상팔자’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닐 거야. 그리고 그것이 작가가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일 거고 말이지.






방학이 시작되었다. 고등학생인 딸아이에게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피곤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딸아이와 나는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소박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진한 믿음으로 방학 중의 보충수업을 과감히 포기하기로 하였다. 진정한 웰빙 방학을 꿈꾸며, 우리는 보고 싶었던 영화를 같이 한 편 보고, 책도 몇 권 골랐다. 『내 날개옷은 어디갔지?』는 제목부터 상징성이 느껴져 예사롭지 않았다. 총 4부로 이루어졌는데, 1, 2부에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과 생각이, 3, 4부에는 연애, 결혼, 출산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고찰과 일하는 여성들의 생생한 인터뷰가 실려 있다.

날개옷을 잃은 선녀처럼 임신과 출산을 치르느라 집에 꼼짝없이 갇혀, 여자라는 이름 외에 아무것도 남아 이지않는 생활을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일도 점점 희미해지고, 무언가하려고 들면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듯 팔다리에 휘감기는 의무와 비난과 죄책감 따위, 가족의 이름므로 나 하나 묻어버리기에 족한 그 숱한 질곡을 알지.

2부에서 인용한 이 구절은 아이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부분이다. 딸아이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없이 불편해했고, 불편한 마음을 넘어 결혼과 출산에 공포감을 갖기도 했다. 아래 글은 아이가 쓴 감상이다.

직업을 가지고 일하던 이들이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집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섭게 느껴진다. 아직은 뚜렷하게 뭘 하고 싶다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아이를 낳고 바로 전업주부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던 내게 정말 '충격과 공포'였다. 특히나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내 곁에서 집을 지키셨던 우리 어머니도 그런 좌절의 가간을 거치셨을 거라고 생각해보니 아찔했다. 초등학교 다닐때엔 어머니가 하교 후에 집에 안 계시면 애 안계시냐고 투정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바깥세상을 꿈꾸고 계셧을 어머니의 작은 소망을 내가 다 짓밟아 버렸던 건 아닐까 싶어 죄송하고 죄스럽다. 지금도 나는 가끔 정말 쓸데없는 투정을 하곤 한다. 이 책을 보면서 정말 제대로 된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아무래ㅗ 이 책은 모두가 봐야 하는 책인거 같다. 좋은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니까 말이다.

앞으로 여성이라면 겪게 될 여러 가지 상황이 딸아이에게는 단지 공포로 다가왔을 뿐이다. 이는 아이가 지금까지 학생이라는 보호받는 신분으로 살아왔으며,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한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 느낌은 아이와 사뭇 다르다.

작가의 이 말에 100% 공감한다. 나 또한 출산 이후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하고 결혼하였으며 외롭고 힘들게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때 감히 크게 소리 높이지 못했던 억울함과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기억이 살아나면서 나는 작가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전 생애를 통하여 여성이 남성에게 뒤처지는 시기는 바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시기이고, 모든 여성은 정말 이 시기야말로 여자가 죽어야 아이가 사는 시기라고 말한다. 그대단한 일을 어찌 이 사회는 그리 홀대하고 몰라주는지.

그냥 개인의 일로 치부하고 ‘낳았으니 당연히 길러’라고만 하고 있다. 그래. 나도 그 그리운 추억만 붙잡고 딸아이에게 그 시간들이 여성에게 무엇이었는지 말하지 않았다면 나도 대단한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그 무엇보다 아이와 꼭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은 3부에서 본격적으로 언급하는 결혼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내용이다. 먼저 과정을 거쳐 간 인생 선배로서 솔직하고 담담히 말하여 그때 아이가 느낄 다양한 감정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다.

그리하여 이 사회의 온갖 매체들이 심어놓은 결혼에 대한 거짓된 환상에서 벗어나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고 싶다. 3부의 이야기들은 1·2부에 비해 무거운 내용이지만 작가 자신 또는 주위 사람 이야기를 예로 들어가며쉽게 풀어 써서 그 문제점과 해법을 같이 고민하게 해주었다. 이 책은 그동안 막연하게만 느껴왔던 한 여성으로서의 내 위치를 일러준다. 그리하여 살면서 그냥 스쳐 넘기고 피해 갔던, 아니 피해 가고 싶었던 일들이 떠올라 굉장히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과 불편함이 한 인간으로서, 이땅의 여성으로서 내 삶을 주체적으로 꾸리려면 반드시 고민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뜨거운 감자’가 아닐는지. 이 책은 여성에 대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 그 자체였다. 작가는 “여자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게 된 비밀을 그것을 품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온 세월들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한다면 그 이야기는 세상을 얼마나 불편하게 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작가의 의도를 알차게 담아내고있다. 그래서 결과가 우리의 삶을 더 피곤하게 하는 것이 될지라도, 더 이상은 못 본 척하지 않도록 우리의 생각을 불편한 자리 위로 끌어낸다. 이런 면에서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는 성공한 책이며, 가치 있고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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