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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바보왕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1-08 14:32 조회 15,4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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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교사,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교사와 시민이 함께 생각해야 할 우리 교육의 문제, 깊게 파헤치고 따뜻하게 쓰다듬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종종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하여 일탈한다. 공부를 통해 관심을 없는 지경에 이른 그들은 자극적 일탈 과정을 시연함으로써 부모와 교사들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이들에게 부모의 기대는 턱없이 높고, 교사는 무기력해 보이며, 학교는 재미가 없다.”

 

누군가는 교육 불가능의 상태를 근원적으로 재구조화하는 방법을 상상하며, 혹자는 그래도 교육에서 희망을 발견하자고 호소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사고와 무관하게 모든 상황은 지금도 가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잘못된 교육일망정 완전히 멈춘 상태에서 개선을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교육을 개선하는 과정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 본문중에서…

 

지금의 교육은 싫든 좋든 정치, 경제적 동기, 학부모와 학생 및 교사들이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5가지 교육 바람들이 서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 교사로써 꼭 사유하고 넘어가야 하는 이야기들을 해보고 있습니다.

교사들의 멘토, 시민들의 벗, 함영기가 전하는 교육 이야기

 

… 관료주의는 교육 실패의 책임을 개별 교사에게 묻는다. 교사들은 책임을 면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절차와 매뉴얼만 잘 따르면 능력 있는 교사라는 무사유 교육이 태동한다. 교사들의 전문성은 연수 이수 시간으로 치환되고, 소모적 업무와 기능적 수업은 교사들에게서 사유의 여백을 앗아간다. 생각 없는 교육이 판을 친다. 생각 없는 교육 저편에서 아이들의 고통이 증폭된다.

 

개별화를 강요당하기는 시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생존을 위해 일터에 나서는 그들은 물화된 욕망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고용의 불안과 암울한 미래는 시민들이 깊이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아이들은 보살핌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된다. 유례없는 사교육 시장이 득세한다. 무려 십 년을 앞당겨 배우는 선행학습 상품이 팔린다. 다시, 교실은 의미 없는 공간이 되고 아이들은 전인적 발달에서 멀어져 간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우리 교육의 맨 얼굴이다.

 

책을 쓰면서 이 문제를 고민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대안도 제시하고 싶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여 책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 교육에 붙어 있는 병증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재차 발견하였다. 대안은커녕 얽히고설킨 실타래의 끝단을 발견하기도 버거웠다.

-      여는 글 중에서

-      ▣ 출판에 즈음하여 저자가 독자에게 드리는 글


-     
이른 아침, 무표정한 얼굴로 교무실에 들어선다. 책상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를 켠다. 업무포털에 접속하여 공문을 확인한다. 그 사이 메신저 알림 쪽지가 줄줄이 뜬다. 보고 날짜를 놓친 공문이 나온다. 급하게 기안을 작성하여 결재를 요청한다. 커피는 식었다. 

교사들의 익숙한 아침 풍경이다. 교사들은 낱낱이 쪼개어진 학교의 행정업무를 나누어 맡는다. 이것이 아이들의 전인적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깊은 생각을 하기에 업무는 벅차고 수업은 힘겹다. 자존감을 잃은 교사들은 무기력에 빠진다.


-     
삼십 년 전 부모가 공부했던 그 풍경 속에 아이들이 있다. 부모들의 삶이 고단해진 만큼 아이들의 고통도 커졌다. 아이들은 욕망하고 경쟁하며, 싸우고, 따돌린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다. 과연 학교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먼저 교사들에게 제안한다. 힘들어도 전망이 있으면 현실을 감당할 수 있다. 익숙한 습관에서 함께 탈출하는 꿈을 꾸어 보자. 구조와 개인, 학교와 교사, 교사와 학생, 이 오래된 모순을 종횡으로 연결하여 탐색할 때, 학교 밖에 요구할 것과 개인적 열정으로 감당할 것을 구분할 수 있다. 그 길을 가고자 하는 데 공부가 아니고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     
전망이 보이지 않는 학교에서 지친 교사들이 시민들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 아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는데 힘을 보태자고 한다. 함께 공부하며 실천하자고 청한다. 깨어있는 시민들은 이 교사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생각하는 교사와 깨어 있는 시민이 만나 연대하고 동행하는 일, 그것이라면 나락에 떨어진 교육에서 작은 꽃 하나쯤 피울 수 있지 않을까?
     

 


-     
저자 함영기



▣저자소개

 

함영기

중학교에서 사춘기 아이들을, 대학에서 예비교사들을 가르치고 있다. 16년째 온라인 교사공동체 ‘교컴‘ 대표를 맡아 교사전문성 신장을 위한 활동을 해 왔으며, 강의 및 저술 활동을 통하여 교육에 대한 사유, 교육과정, 시민의 교육 참여 등에 대한 의견을 밝혀 왔다. ’통하는 학교 통하는 교실을 위한 교사리더십’, ‘수업전문성의 재개념화를 위한 실천적 탐색’ 등의 책을 썼고, ‘교사문화’, ‘수업전문성’, ICT 교육의 상업화’ 등에 대한 학술 논문을 발표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수업전문성'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교육희망 객원필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페이스북‘에서 교육 글쓰기를 통해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교컴 : http://eduict.org

페이스북 : http://facebook.com/younggi.ham

이메일 : webtutor@daum.net

 

▣책 내용

01사회


정체성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종종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하여 일탈한다. 공부를 통해 관심을 끌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그들은 자극적 일탈 과정을 시연함으로써 부모와 교사들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이들에게 부모의 기대는 턱없이 높고, 교사는 무기력해 보이며, 학교는 재미없다
.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이 제각각인 가운데 교육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된다. 이 욕구들이 겹쳐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 충돌하여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러한 갈등은 어떻게 조절하고 해소될까?  교육을 시장의 기능에 맡겼을 때 교육 독점과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교육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고민해야 한다.

하나의 정책적 결정을 두고 갈등이 예상될 때 책임 있는 정책가는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 정책을 바로 이끄는 기준은 바로 아이들의 전인적 발달을 위한 교육 공공성의 확보이다. 아이들의 성적을 결정하는 요인은 얼마나 노력했느냐가 아니라, 부모의 직업이라는 조사가 있다. 학생들을 향하여 너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주술적 되뇜을 해야 하는 교사들도 마음이 편치 않지만, 정말로 심각한 것은 끔직한 경쟁 속에서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아이들의 전망 없는 미래에 대한 좌절이다.

 

02 개인

가혹하게 엄습하는 개별화는 모든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물화된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며, 내 몸과 내 마음만 평화를 얻으면 그만이라는 힐링 유행을 만들어 낸다. 진정으로 치유에 이르는 길은, 현실이 아무리 고달프고 갈 길이 멀더라도 나에게 힐링을 강요하는 구조를 통찰하는 것, 가야 할 방향을 아는 것, 그것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과 마주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개인의 몸에 집중하게 되면, 타인을 배려하고 협력하는 시민성은 떨어진다. 신체적 건강을 강조하는 분들은 몸만 건강할 뿐,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때 더 많은 이웃이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관대하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걷고, 달리고, 근육을 발달시키고, 몸매를 다듬고, 영양분이 충만한 음식을 찾는 많은 분들이 그만큼 열정과 정성을 주변으로도 나누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이웃과 행복을 나누기 위하여.

 

03 학교


아이들과 씨름하고 갈등하며, 부조화로 가득한 하루를 견디고 난 후, 교사들은 학교, 이대로 괜찮은 거야?’ 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그것은 거대하게 굴러가는 현실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확인하는 표현이거나, 아니면 그 속에서 실오라기 같은 전망을 발견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나온 비명과도 같은 말이다.

전인적 발달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은 모든 교사가 한결같다. 

교사와 학생을 소모시키는 모든 것을 과감하게 솎아 내는 것이 전인적인 발달을 돕는 길이다.

학급은 인위적 관리 단위이지만, 이 안에서 아이들의 삶은 자연발생적 문화를 형성한다. 결국 학급은 인위적으로 관리하려는 자와 문화적으로 생활하는 자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생태계의 맨 아랫단에 위치한 아이들에게 학급은 매일 끔찍한 경험을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학급을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 학급이라는 시스템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불온하고 발칙한 상상이 필요하다. 상상의 출발점은 관리가 아닌 문화이다.

이 문제를 사고할 때 교사 중심에서 관리와 통제, 무사고 달성과 같은 후진적 관념 속에서는 새로움이 상상되지 않는다. 어떤 창조도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새로운 상상이 필요할 때라는 징표는 이미 너무 많이 드러났다. 누군가의 골방 속 상상이 많은 이들의 사유를 자극했으면 한다

 

 

04 교사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통하여 스스로 지식을 내면화해 갈 수 있도록 조력하는 마음이 교사에게 필요하다.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고갈된 교사에게는 호기심이 충만한 아이가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호기심은 세상에 대한 탐구의욕이다. 교사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끊임없는 동기를 부여하는, 지식의 내면화를 위한 원인 제공자여야 한다.

 

오늘날 지식의 내면화라는 과제가 더욱 엄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어느 때보다 더 학습자들이 지식을 기능적, 절차적으로 기억하고 암기하는 데 급급하도록 조성된 환경 때문이다. 교사는 배움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가르치는 본인부터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문성 향상을 구실로 업무와 수업, 생활지도에 지친 교사들을 내몰아 소진시키지 말고, 좋은 책과 좋은 경험, 풍부한 사유로 교사의 안목과 통찰력을 높이게 하는 것, 그래서 깊은 안목과 통찰력으로 아이들과 만남이 이루어지게 돕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요구되는 교사 전문성의 핵심이다.

 

05 학생


우리나라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압축적 성장을 이룬 나라다. 압축적 성장의 과정에서 민주적 삶의 양식이 체계화되지 못한 채 아주 짧은 시기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 졌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경쟁적 자본주의와 만났다. 이 둘의 만남은 경쟁을 합리화 하는 선발적 교육관, 극단적 이기주의의 만연, 물욕에 사로잡혀 이웃을 도외시하는 풍경들에는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오로지 내 안전만을 도모하는 살벌한 정글자본주의의 맨 얼굴이다. 오늘날 학교와 교실의 모습도 이것에 영향 받은 바가 크다. 교실 붕괴는 곧 민주적 시민성의 붕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인적 발달을 말할 때는 민주적 시민성과 굳건히 결합하여 개념화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나온 이후 학교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수단으로 상벌점제를 앞 다투어 시행하기 시작했다. 상벌점제는 체벌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한창 성장하고 있는 학생들의 일탈과 선행사항을 수치로 환산하여 누적 관리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온당하지 못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협력활동 등을 교환가치로 치환함으로써 민주적으로 사고할 기회를 막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기대한다면 상상하는 것이 즐겁고 유익한일이 되도록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구성해야 할 많은 지식 중에는 바로 기억해 두어야 할 것도 있고, 두고두고 음미해야 할 것들도 있지만 이 모든 지식들은 아이들의 사유와 연결될 때만 가치를 지닌다. 아이들에게서 상상과 사유가 멈추면 교육도 끝이다

 

 

06 수업


초 중 고등학교 12년을 거치면서 공부한 지식들은 정확히 하루 만에 심판을 받는다. 그러니까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면 너무 허탈한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도박과도 같은 공부이다. 필자는 이러한 방식의 공부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의 능력을 죽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입만 열면 정보화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은 창조적이고 진취적이며 능동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보장하기 위한 방범으로 자기주도적 학습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을 구호로 외치면서 실제 우리들의 학교는 과거의 공부 방식에서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

 

수업방법이 교육철학에 기초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특정 수업방법이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좋은 수업방법은 교사들의 성장 및 발달과 연계돼야 한다. 다만 수업방법은 사회적 배경이나 학교 및 학습자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이라고 할 때, 특정 수업방법을 지나치게 신념화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잘 된 수업과 그렇지 못한 수업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꼭 구분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좀더 풍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전체 중에서 소수를 선발하는 데 시험만큼 합리적인 것은 없고, 시험은 필연적으로 경쟁을 불러오며, 경쟁은 학습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다. 그러므로 교육에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 자들에게는 피하기 힘든 유혹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정교하고 세련된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여 어떻게 선발하지 못한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있다.

 

 

07 평가

인간의 어떠한 능력도 잴 수 있다는 평가의 논리, 평가 결과를 얻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논리, 이것이 개별 국가를 넘어 지구촌 학생들을 서열화하는 기제이다.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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